뻔한 문법 깨고 관념 뒤집었다… 호러에 새옷 입힌 멕시코 소설가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6-09-17 00:10
입력 2026-09-17 00:10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 방한

로커스상·영국 환상문학상 석권
공포의 전형·박제된 기대에 반전
멕시코 소설가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
ⓒMARTIN DEE


괴물의 형상을 한 타자(他者)와 그에 맞서는 백인 남성 주체. 어쩌면 ‘공포’라는 감정 역시 정치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반복되는 전통의 답습은 지루함만 안길 뿐이다. 정해진 문법을 처참히 깨부수는 게 소설가의 미덕. 여기, 완전히 ‘새로운 공포’를 들고 찾아온 작가가 있다.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차 한국을 찾은 멕시코 소설가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45)를 16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멕시칸 고딕’과 ‘모로 박사의 딸’을 쓴 그는 2021년 로커스상과 영국환상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30년간 비주류 장르였던 호러가 최근 새로운 옷을 입고 과감히 변신하고 있다”면서 “호러소설이 무엇인지 관념 자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 앞으로 더 다채로운 ‘무서운 이야기’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폭풍의 언덕’ 같은 소설을 읽으며 언젠간 고딕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는 다 좋았는데, 문제는 이 장르가 너무 ‘유럽적’이라는 점이었죠. 멕시코인이 나오는 고딕소설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고딕소설은 긴장감과 공포를 주된 분위기로 삼는 문학의 한 장르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같은 작품을 떠올리면 된다. 모레노 가르시아가 주목받은 것은 오래된 장르의 문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뒤틀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멕시코인이라는 정체성이 있다.



“우리가 장르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독자가 뚜렷하게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오늘날 그 전통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굉장히 흥미로운 시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갈 겁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어진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는 방식의 글쓰기를 하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문학적 경향을 일컬어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한다. 모레노 가르시아의 소설 역시 ‘마술적’이면서도 동시에 ‘사실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기댈 수 없다.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그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에 저항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말을 향한 모레노 가르시아의 감정은 그래서 ‘애증(愛憎)’이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호러소설을 쓰면서 장르의 경계를 넓히고 있어요. 요즘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인기가 많죠. 호러소설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출판·편집하는 사람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그만큼 호러소설이 무엇인지에 관한 관념도 달라지고 있고요. 지금은 서부를 배경으로 한 복수극을 쓰고 있어요. 조금 나중에는 인공지능(AI) 이야기도 쓸 거예요. 그런데 ‘터미네이터’ 같은 건 싫어요. AI와 관련된, 아주 ‘이상한(Odd)’ 소설을 써볼 겁니다.”

오경진 기자
2026-09-1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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