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에선 성당(교회)에 들어갈 일이 많다.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을 기회도 있다. 종교가 무엇이건 천장 높은 곳에 울리는 음악을 들으면 신비로움과 황홀함을 느끼게 된다.
파이프오르간을 흔히 악기의 왕이라고 한다. 엄청난 크기와 이를 능가하는 소리 때문이다. 크기만큼이나 구조도 복잡하다. 보이는 것은 몇 단의 건반, 발로 밟는 페달, 좌우의 스톱과 큼지막한 파이프들뿐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많게는 수천 개의 파이프가 숨어 있고, 송풍기와 바람상자들, 그리고 거기에서 파이프로 바람을 불어넣는 복잡한 장치들이 있다. 건반을 누르면 밸브가 열리고, 미리 선택해 둔 스톱에 해당하는 파이프에 압축된 공기가 들어가 소리가 만들어진다.
파이프오르간은 볼륨도 엄청나지만 음역도 넓다. 대형 악기의 경우 저음은 가청 주파수 아래까지 내려가고 고음은 피콜로를 능가할 만큼 높다. 다양한 음색은 더 놀랍다. 기본적인 오르간 사운드에 더해 온갖 관악기와 현악기를 연상시키는 음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한 여러 악기의 소리를 섞어서 조합할 수 있다. 현대의 많은 파이프오르간은 이 조합을 기억시켜 둘 수 있기에 연주자는 곡에 따라 미리 세팅해 놓는다.
세종문화회관이 1978년 개관했을 때 동양 최대 파이프오르간을 보유했다는 것이 자랑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파이프오르간이 없기에 필요할 때에는 전자 오르간을 사용한다. 정확히 10년 전 롯데콘서트홀이 개관하면서 파이프오르간 애호가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후 부천아트센터와 부산콘서트홀에도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면서 오르간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이 늘었다.
바흐 등 바로크 작곡가나 프랑크, 비도르 등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의 독주곡도 많지만, 파이프오르간은 교향곡이나 관현악곡에서도 종종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러는 교향곡 2번 ‘부활’에서는 절정의 클라이맥스에서, 교향곡 8번에서는 1부의 맨 처음 힘찬 합창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시여’가 나올 때와 2부의 피날레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등 가장 핵심적인 곳에서 오르간을 사용했다.
레스피기는 ‘로마의 소나무’ 중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에서 로마군이 멀리서부터 가까이 오는 행진을 묘사하는데, 오르간은 대군이 만들어 내는 땅의 진동을 느끼게 한다. 물론 생상스 교향곡 3번을 빼놓을 수는 없다. 1악장 후반부에 저역에서 조용하게 등장해 오케스트라의 아래를 떠받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형성했던 오르간은 2악장 후반에서 다시 등장해 음악의 성격을 단숨에 바꾸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장대한 피날레를 만들어 낸다.
모든 음악은 실연으로 들어봐야 한다지만 파이프오르간 음악만큼 그 차이가 큰 것도 없다. 그러니 파이프오르간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가 보기를 권한다. 공간이 악기가 되고, 진동도 음악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