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항공모함 배멀미

김상연 기자
김상연 기자
수정 2026-09-16 01:44
입력 2026-09-16 00:36


오래전 한반도 인근에 들어온 미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를 취재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날아가는데, 심한 멀미가 났다. 육지처럼 널따란 항모에 내리는 순간만을 고대했다. 그런데 웬걸, 그 큰 항모도 파도에 따라 뒤뚱뒤뚱 흔들렸다. 배멀미가 이어졌다. 속이 울렁거려 제공된 식사를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항모 내부 취재를 마치고 갑판으로 올라가려는데, 좁은 계단으로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이 뛰어 내려왔다. 보니 타일러의 노래 가사처럼 ‘막 전쟁터에서 돌아온 듯’(fresh from the fight)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관심은 그 짧은 항모 활주로에 어떻게 전투기들이 이착륙하는지에만 쏠려 있었다.


내가 탔던 그 링컨호가 지난해 말부터 무려 200일 넘게 중동에서 작전을 수행하느라 승조원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순간 그때 항모에서 마주친 그 조종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좀더 제대로 된 기자였다면, 항모에서 복무하는 이들의 실존에 대해서도 썼을 것이다.

김상연 수석논설위원
2026-09-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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