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관론자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수정 2026-09-16 00:36
입력 2026-09-16 00:36
오랫동안 비관은 공짜였다. 시작했다가 틀리면 돈과 시간을 잃었지만, 시작하지 않아 놓친 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잘못된 낙관에는 청구서가 왔고, 잘못된 비관에는 오지 않았다. 인공지능(AI)은 이 공식을 바꾸고 있다.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내려가면서, 시도하지 않는 선택은 오히려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나는 매일 밤 코드를 짠다. 예전 같으면 무모한 일이었다. 몇 달은 걸린다며 접었을 생각을 이제는 AI 에이전트에게 지시하고 맡긴다. 개발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오랜 시간을 들여야 가능했던 일을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한 두 시간이면 만들어준다. 돌려보고, 안 되면 버리고, 되면 취한다. 내가 15년 만에 개발을 다시 시작한 건 갑자기 용감해져서가 아니다. AI의 도움으로 시작하는 데 용기가 덜 필요해졌을 뿐이다. 머릿속 검열관이 틀렸던 것도 아니다. 근거로 삼았던 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완성은 여전히 어렵다. 빠르고 저렴해진 것은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이다. 몇 달짜리 착각이 몇 시간짜리 실험이 된다. 틀리지 않으려고 판단을 미루는 동안 누군가는 열 번 틀리며 다음 시도의 단서를 얻는다. 낙관은 믿음의 크기보다 실험하고 배우는 횟수에 가까워진다.


그동안 비관이 합리적이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시도가 비싼 세계에서 개인은 검열관을 두고, 조직은 승인 단계를 쌓고, 학교는 많이 시도하는 사람보다 틀리지 않는 사람을 높게 평가했다. 이제는 판단한 뒤 만드는 대신 작게 만들어본 뒤 판단할 수 있다. 가능한 것의 범위가 빨리 바뀌면 경험도 빨리 낡는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 규제와 교육은 시도하지 않은 손실을 세지 않는다. 허용된 것만 할 수 있는 규제에는 국가가 앞으로 가능한 일을 미리 열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가능성이 제도보다 빨리 생기면 허용 목록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낡는다. 규제를 만든 이유는 문서에 남지만, 그 때문에 태어나지 못한 스타트업은 남지 않는다.

물론 틀려도 되는 실험과 타인에게 피해를 넘기는 실험은 구분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허용이 아니라, 작게 시험하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은 지난 시대의 게임을 잘했다. 답이 있는 세계에서는 오차를 줄이는 사회가 강하다. 답을 찾아야 하는 세계에서는 탐색 범위를 넓히는 사회가 강하다. 그러나 다음 시대를 가르는 것은 확신에 찬 예측보다, 실제로 해보고 배운 것의 총량일 것이다.

머릿속 검열관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그가 안 된다고 말하면 되묻는다.

“그건 언제의 이야기인가.”

지금은 낙관론자들의 시대다. 모든 것이 잘될 거라 믿어서가 아니다. 무엇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설득하는 일보다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

김서준 해시드 대표
2026-09-1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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