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로 불길 번지는데 송유관까지 피격… ‘원유 동맥’ 꽉 막힌다

최재헌 기자
수정 2026-09-13 23:42
입력 2026-09-13 23:42
중동發 에너지 대란 공포 확산
반군 후티, 홍해 해협 통제권 장악사우디 핵심 송유관은 드론에 피습
美 “이란이 배후” 지원 요청은 거절
호르무즈 해협서 이란 상선 피격
국제 유가 120弗까지 치솟을 수도
로이터 제공
이란이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예멘 반군 후티를 앞세워 페르시아만에 이어 홍해까지 공격 범위를 넓히며 동·서 양대 해협을 중동 원유 수송로를 뒤흔들 지정학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송유관까지 습격당하면서 중동발 원유 수송 마비에 따른 ‘에너지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후티는 지난 10일 홍해 연안의 전략 항구인 모카를 기습 장악한 데 이어 바브엘만데브 해협 한복판의 페림섬까지 점령했다. 이 해협은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폭 30㎞ 안팎의 좁은 수로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원유와 컨테이너가 통과하는 해상 요충지다. 통신은 정부군이 철수한 곳에 무장한 후티 전투원들이 진입하면서 해협 통제권이 사실상 후티 측으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에스마일 가아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새로운 저항의 안보 벨트가 구축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어, 이번 진격의 배후에 이란의 직접적인 조율이 있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11일에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응해 사우디가 원유 우회로로 활용해 온 1200㎞ 길이의 ‘동서 파이프라인’이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잠정 중단됐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4~5%에 해당하는 하루 400만~500만배럴을 나르던 핵심 동맥이 마비된 셈이다. 사우디 정부는 드론이 이라크 영토에서 발진한 것을 확인하고 조사에 착수했고, 이라크도 이란계 무장 민병대의 활동 무대로 지목된 접경 지역을 폐쇄했다.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후티 공격에 대한 군사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일랜드 기자회견에서 송유관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면서도, 후티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싸움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직접 참전에는 선을 그었다.
12일에는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이 반격에 나섰다. 예멘 정부는 모카항 인근에서 후티의 차량과 무기를 파괴하고 조직원들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3일 이란 상선 한 척이 호르무즈 해협의 게슘섬 인근에서 피격돼 1명이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이란 전쟁이 11월 중간선거 직후 끝난다며 “유가가 급락할 것”이라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국제유가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에너지 자문업체 에너지 애스펙츠 리처드 브론즈 창립자는 BBC에 “지금까지 석유 시장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완충 장치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며 “중동 전역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원유 가격은 이란 전쟁 초기 배럴당 120달러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재헌 기자
2026-09-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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