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물길 인류의 욕망이 흘렀다
김임훈 기자
수정 2026-09-11 00:31
입력 2026-09-11 00:31
세븐 리버/버네사 테일러 지음/박은영 옮김/미래의창/640쪽/3만 2000원
인류사에서 강은 길·부·권력 의미나일 등 일곱 강과 흥망성쇠 통해
인간이 치른 대가와 미래를 물어
미래의창 제공
지구가 품은 물 가운데 강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0.0002%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강은 인류 문명에서 길이었고, 부였으며, 권력이었다. 인간은 강가에 도시를 세우고 물길을 따라 교역했고 둑·댐·운하·관개수로를 만들어 흐름을 바꾸려 했다. 저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버네사 테일러는 “인간이 강을 바꾸는 일은 비버가 둑을 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자연스러운 개입이 어떻게 제국의 야망과 도시의 성장, 삶의 변화로 이어졌는지 느끼게 된다.
이집트 문명을 만든 나일강, 중부유럽을 지나 흑해까지 이어지는 다뉴브강, 인도의 젖줄이 된 갠지스강, 영국 런던을 관통하는 템스강, 미국에 풍요를 선사한 미시시피강, 서아프리카에 생명의 젖줄이 되는 나이저강, 중국문명의 중심 양쯔강. 책은 일곱 강을 따라 선사시대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인류사를 읽는다. 책에서 강은 문명의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과 권력의 움직임을 이끈 역사의 주인공으로 놓는다. 신화와 종교, 전쟁과 교역, 식민 지배와 산업화, 댐 건설과 생태위기를 강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관통한다.
이 책은 거대한 세계사를 연대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강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권력과 교역, 신앙과 기술이 만나는 장면을 포착한다. 독자는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서로 멀어 보였던 문명들이 강을 매개로 어떻게 연결됐는지 보게 된다.
19세기 이집트의 메흐메드 알리는 나일강을 근대국가 건설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500마일이던 운하망을 1200마일까지 넓혀 농업과 산업을 키우려 했다. 그 목표를 위해 농민들을 해마다 60일씩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나일강 로제타 지류와 알렉산드리아를 잇는 마흐무디야 운하 재건에는 10만명이 숨졌다는 추정도 나왔다. 저자는 물길을 통제하려는 근대화가 산업과 국가의 성장만이 아니라 노동의 희생, 유럽 열강의 개입, 나일강 생태계의 변화를 함께 불러왔음을 짚는다.
나이저강(책에서는 니제르강으로 표기)에서는 강이 만든 부가 세계를 움직였다. 젠네와 팀북투는 사하라를 넘어온 소금과 서아프리카 금이 만나는 교역의 결절점이었다. 14세기 말리 제국의 지배자 만사 무사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면서 8만명의 수행원과 500마리의 낙타를 대동했다. 그가 뿌려대는 금 때문에 이집트 카이로 물가가 순식간에 20% 뛰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유럽의 지도 제작자들이 황금 왕관과 금화를 든 그를 지도에 그려 넣은 까닭이다. 저자는 그 찬란한 교역로에 노예무역의 그림자까지 함께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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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강에서는 물 관리가 미국식 근대화의 청사진이 됐다. 특히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VA)는 미시시피강 최대 지류인 오하이오강으로 흘러드는 테네시강 유역을 종합개발하는 대규모 실험이었다. 1953년 TVA 보고서에는 이 모델이 전 세계 36개국으로 뻗어 나가는 지도가 실렸다. 저자는 TVA를 지역 개발의 성공 사례에만 머물지 않고, 전시 산업의 전력망이자 냉전기 미국의 경제·외교적 영향력이 강을 따라 확장된 사례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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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7월 16일 중국 우한의 양쯔강에서는 5000명이 참가한 횡단 수영 행사가 열렸다. 당시 73세였던 마오쩌둥도 물에 들어갔다. 보란 듯이 양쯔강을 헤엄쳐 건넜다. 이는 지도자의 건재를 과시한 선전이면서, 거대한 강마저 국가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저자는 양쯔강을 중국의 통일과 성장의 동맥으로 살피면서도, 댐·운하·수력발전의 거대 개발 계획이 ‘바이지’로 불린 양쯔강 돌고래를 멸종시킨 과정까지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강을 따라 문명의 흥망을 훑으며 결국 인간이 자연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를 묻는다. 강은 제국과 도시를 키운 자원이었으나, 통제와 개발의 대상이 된 뒤에는 노동의 희생과 생태계의 붕괴를 떠안았다. 일곱 강의 이야기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하나의 질문으로 합쳐진다. 문명을 만든 강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할 것인가.
김임훈 기자
2026-09-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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