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마라… 골목이 건넨 다정한 쉼표[박상준의 문장 여행]
수정 2026-09-11 00:32
입력 2026-09-11 00:32
작고 소중한 일상의 골목, 동인천
“무리하지 말자 해놓고 또 뛰었다”… 동인천 골목길 홍예문 넘어 비밀의 정원까지… “어떻게 애쓰지 않고 사나” 반문하던 날 지나 골목 꽃들과 눈 맞추기
‘“쓸데없이 애쓰지 않는다.내 한계를 받아들인다.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
뭐든 천천히, 꾸준히 해나간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옮기면
어려울 것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
한수희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
동인천을 여행했다. 한수희 작가가 동네 산책이라 부를 만한 골목을 걸었다. 동네 사람이 아닌 내게는 여행이라 부를 만큼 다채로웠다. 사람들이 살아낸 세월의 모습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무리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는, 조금 무리하며 걸었다.
●무리하지 않는 산책
언젠가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무 애쓰지 마.”
나는 어머니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애쓰지 않고 살아요.”
애쓰지 않고 되는 일이 있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애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게 쉽지 않을 때 산책을 한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한다. 그동안 애쓴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애쓰지 말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 또한 애쓰는 것일까.
한수희 작가는 동인천에 산다. 작가는 동네를 산책하고 단골 카페에서 작업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때로는 동인천을 여행하는 소책자를 만들거나 가볼 만한 장소들을 틈틈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한수희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터틀넥프레스)는 작가가 7년 전 안양에 살던 시절에 썼다. 대신 개정판(2026)에는 동인천의 한수희가 안양의 한수희를, 쉰을 바라보는 한수희가 갓 마흔이 되던 해의 한수희를 돌아보며 몇 마디를 덧붙인다. 내게는 그 덧말들이 현재의 작가가 그때의 자신에게 건네는 감사의 인사처럼 다가와 따스했다.
7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천천히 살자’는 목표를 세우고 여전히 무리하지 않으며 산다(그러려 애쓰는지도). 제대로, 충실히 살고 싶어서다. 이러나저러나 한 인생이니까. 나는 작가의 책을 읽고 작가의 동네인 동인천을 걷는다.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산책 좋아하는 작가처럼 걷다 보면 조금은 덜 애쓰고 사는 법도 알게 되겠지 싶어서. 대신 “해치우듯 밀어내는” 여행 말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걷기로 한다.
●작고 여려 반짝이는 것들
동인천역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동인천지하상가를 지나 지상으로 나온다. 홍예문과 자유공원까지 올랐다가 각국조계지 계단에서 캔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신포시장으로 내려오는, 작가가 추천한 ‘우리 동네 만끽 리스트’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러고는 배다리헌책방거리와 작가가 애정하는 패치워크의 동양가배관에서 커피 한잔을 마셔야지 마음먹는다.
첫 진입로는 내리감리교회로 잡는다. 내동 성공회성당을 거쳐 홍예문까지 가야지. 큰길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가게에 호기심이 인다. 과일도 있고, 도자기도 파는 듯하다. 안쪽에는 족자가 하나 걸려 있다.
“어르신, 무슨 뜻인가요?”
“나도 몰라.”
뜻을 몰라도 마주 보고 웃는다.
내리감리교회 옆으로 난 골목은 가파르다. 걸음은 저절로 느긋하다. 그럴수록 많은 게 보인다. 동네라고 느끼는 곳들의 특징들. 사람 사는 집이 있고 집 앞에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하다. 길가에 들마루가 놓여 있고 그곳에는 꼭 동네 할머니 한둘이 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도란도란하며 지나는 이웃에게 말을 건다. 동인천도 다르지 않다.
“어디 좋은 데 가?”
“어디 좋은 데 가지!”
그런 장면들은 스치듯 지나쳐도 자꾸만 뇌리에 남아, 나는 홍예문 가는 길에 이름 모를 꽃이나 낡은 간판, 태양초를 널어 말리는 풍경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자꾸 고개를 숙인다. 땅 위의 작은 꽃들과 눈 맞추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쉼터가 된 전망 좋은 집들
높은 홍예문 위에서는 반대로 기다란 길을 내려다본다. ‘홍예’는 교통의 편의를 위해 산을 가로질러 낸 통로치고는 지나치게 예쁜 이름이다. 홍예문부터 자유공원까지는 느슨한 구간이다. 좌측은 내항이 내려다보이는 카페들이, 우측은 ‘어린이헌장기념비’ 같은 옛날 공원의 흔적이 남은 숲이다. 서쪽에서 살금살금 갈바람이 불어온다. 그제야 계절의 기온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내려갔다는 걸 깨닫는다.
자유공원은 1888년에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각 나라의 조계지가 있던 개항 초기라 첫 이름은 각국공원이었다. 광복을 맞은 해 만국공원이 되었고 지난 1957년부터는 자유공원이라 불린다. 공원이 있기 전에는 응봉산(69m)이었다. 각국공원이 되고 나서 동네 사람들은 오포산이라고도 불렀다. 매일 정오마다 공포를 쏘아 시간을 알렸기 때문이다.
공원의 산책로는 키 큰 나무가 하늘을 가린다. 오늘은 외국인 여행객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막 걸음마 뗀 아기가 아장아장 막아선다. 자유의 풍경들, 공원은 한참을 지나 비로소 동네 공원이 되어 간다.
자유공원 광장 남쪽 아래는 옛집들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산책길의 풍경이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산책을 여행으로 만드는 장소들이다. 제물포구락부는 1891년에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지은 2층 양옥이다. ‘구락부’는 외국인의 사교장을 뜻하는 일본어 ‘쿠라부(Club)’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단어다. 사교장답게 중심의 바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인천시민愛집은 옛 일본식 주택 터에 1961년 지은 한옥이다. 2001년까지 인천시장 17명이 관사로 사용했다. 이웃한 이음 1977은 1977년에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벽돌 주택이다. 일제강점기 정미소의 벽돌과 전돌 등으로 마감했다.
세 집을 넘나들며 100년 동인천 건축의 변천사를 보는 건 흥미롭다. 형태도 구조도 모두 다른 집은 인천항이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라는 점만은 공통이다. 그러니 부와 명예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집이었을 거다. 여행자와 시민들의 쉼터가 된 현재는 이들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간간이 몇몇의 방문객이 소란스러워도 그럴수록 그들이 머무는 시간은 짧아서 금세 고요가 찾아든다. 신경 쓰이지 않을 즈음에는 이 넉넉한 집에 주인이 된 듯하다.
●비밀의 정원에서
세 집 가운데 인천시민愛집은 정원이 화사하다. 옛 일본식 주택이 간직하던 정원이다. 개량한옥은 종이 문 대신 유리 문을 달았다. 창밖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들이 눈부시다. 나뭇가지 사이를 총총히 넘나다니는 새들도 보인다. 그때마다 잎사귀가 살랑살랑 계절의 샘 위에 찻잔처럼 흔들리는데 정원이 부르는 것이다.
정원은 남쪽 경사지에 아담하다. 알고 보니 그쪽이 정문이다. 뒤편 제물포구락부에서 들어와서 알아채지 못했다. 정원 사이로 몸을 숨긴 호젓한 계단은 벌써부터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케 한다. 그 풍경에 반해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꺼낸다. ‘가을에 꼭 다시 와야겠네’라고 혼잣말하며. 일단 카메라를 꺼내니 찍고 싶은 장면이 많다. 괜스레 들떠서 허둥지둥, 그러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발가락이 심하게 아려 촐싹댄다. 이놈의 욕심이란.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산책하기로 다짐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났으려나. 무리하지 않는 선은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반복되어야 생겨나는 것일까.
정원 경계석에 앉아 숨을 고른다. 고개를 드니 하늘이 둥글다. 정말 단풍이 들면 아름답겠다. 오늘의 ‘상처’를 기억해 여유로운 가을 나들이를 한 번 더 계획해야지. 대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와서는 걸음의 속도를 늦춰 걷는다. 발가락이 아프니 그럴 수밖에.
각국조계지 계단에서는 한 번 더 쉬어간다. 조계지는 개항장의 각 나라가 치외법권을 누리던 지역이다. 이 평범한 골목의 계단이 각국 열강의 경계였다는 게 좀체 믿기지 않는다. 그 사이 시간은 어느새 점심을 넘어섰다. 무리하지 않으며 느리게 돌아보자 마음먹었지만 실은 또 욕심이 앞섰던 게 분명하다.
한수희 작가의 ‘우리 동네 만끽 리스트’에 있던 중국집, 전가복에 들러 짬뽕밥 한 그릇을 주문해 꼭꼭 씹어 먹는다. 이곳의 짬뽕밥은 공깃밥 대신 볶음밥이 나온다. 짬뽕은 붉은데 과하게 맵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
●여름을 쉬는 과잣집
동인천 산책의 마무리는 인천 최초의 상설시장 신포시장이다. 시장 입구 닭강정 맛집은 이미 사람들로 붐빈다. 점포 앞에서 갓 튀겨낸 치킨에 양념을 쓱쓱 비벼 파니 모두가 주목한다. 시장에는 숯불에 구운 김이나 에그타르트도 맛있다.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맛집은 또 있다. 한수희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맛과 품질에 타협하지 않기 위해” 여름을 쉬는 신포과자점이 휴가를 끝내고 드디어 문을 열었다. 10㎡(약 3평) 남짓한 과자점은 반세기 넘게 상투과자 등 10여 종의 생과자를 구워 판다. 생과자는 습기에 약해 여름에는 금세 눅눅해지므로 장사를 쉰다. 저울에 한 근을 달아 파는데 거짓 없는 땀의 무게다. 한수희 작가는 이런 이들을 “마음속의 스승들”이라 했다. ‘머털도사’ 같은 사람들, 계절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사는 사람들.
신포시장을 나와서는 동인천역으로 복귀한다. 그전에 기어이 토니커피하우스에 들러 한수희 작가의 동네 만끽 리스트를 마무리한다. 천천히 내린 드립커피와 호박파이 하나를 앞에 두고서, 배다리마을과 패치워크는 단풍 든 가을에 찾았을 때 들러야지 하며. 물론 급행 지하철 시간에 맞춰 뛰쳐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스스로의 모자람을 확인하고 말았지만.
“텀블러 두고 가셨어요.”
카페 바리스타가 문 앞까지 급하게 쫓아와 나를 배웅한다. 아차차! 그가 건넨 텀블러를 받고 인사하며 ‘서두르지 않는 선’은 없을까 생각한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옮기면 어려울 것은 없다, 고 한수희 작가는 말했지만.
글·사진 박상준 여행작가
2026-09-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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