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누가 한국인인가

임주형 기자
임주형 기자
수정 2026-09-10 01:42
입력 2026-09-10 00:45
‘누가 미국인인가.’

미국에서 요즘 가장 핫한 논쟁 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집권기 취임과 동시에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논쟁이 불붙었다. 불법체류자나 일시적으로 미국에 머무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시민권을 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 수정헌법 14조가 150년 넘게 보장해 온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인’이란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미 사법부의 판단은 이미 명확하게 나왔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6월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원정출산’ 등을 겨냥한 새로운 행정명령을 내놓으며 다시 출생시민권 범위를 제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달 초 메릴랜드 연방지법으로부터 대법원의 판결에 반하는 조치라며 효력을 정지당했다.


출생시민권 논쟁의 뿌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 및 성장 과정과 맞닿아 있다. 애초 출생시민권은 남북전쟁 이후 흑인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자와 자녀를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시키는 장치가 됐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철도를 놓고 공장을 돌리며 세계 최강대국의 토대를 닦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 일부 이민자들의 일탈,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이들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 출산을 목적으로 미국을 찾은 외국인 사례를 내세우며 출생시민권이 본래 취지와 달리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생시민권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과 특정 국가 국민의 입국·비자 발급 제한, 취업비자 문턱 강화 등 반이민 정책의 고삐를 한층 조이고 있다.

다민족·이민국가의 상징인 미국이 빗장을 걸고 있는 반면, 오랫동안 단일민족 정체성을 강조해 온 한국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와 지역소멸에 직면한 한국은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틀고 있다. 인구감소지역에 거주하며 취업하는 외국인에게는 장기 체류의 길을 열어 주고,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비자 제도를 개편했다. 과거에는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을 ‘잠시 데려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필요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외국인을 불러들이는 속도만큼 마음까지 열고 있을까.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려 하자 일부 주민들은 ‘테러범도 함께 들어올 것’이라며 거센 반대 시위를 벌였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공산당을 비판하며 시작된 반중 집회는 점차 중국인 자체를 겨냥한 혐오 표현으로 얼룩졌다. 150년 넘게 지켜온 시민권의 경계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미국을 보면서 한국도 이제 우리 사회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누가 한국인인가.’

임주형 워싱턴 특파원

임주형 워싱턴 특파원
2026-09-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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