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역사프리즘] 시민사회는 왜 항상 ‘위기’일까
수정 2026-09-09 01:39
입력 2026-09-08 21:32
1970년대 이후 각국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커졌고 세계화와 함께 이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시민단체를 조직해 정부를 설득하거나 압박하면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라틴아메리카는 1980년대에,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는 1989년 이후 민주화와 함께 정부로부터 시민사회가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1993년 환경운동연합, 1994년 참여연대의 창립으로 이어지며 1990년대의 시민운동은 기존 정치가 제기하거나 수용하지 않았던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관철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이들은 정부 정책과 국회 입법에 관여하는 ‘대의의 대행’으로 자리잡았다. 오랜 권위주의 통치를 거치면서 민주화 이후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정당정치를 대신하는 ‘준정당’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시민운동이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던 바로 그때,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위기를 경고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1994년 경실련은 스스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1996년에는 한겨레신문이 같은 제목의 특집기획을 통해 이 문제의식을 확산시켰다. 당시에는 시민의 참여보다는 명망가와 전문가, 상근활동가 중심 운동으로 시민적 대표성이 과대대표되고 있다는 진단이 주를 이뤘다.2000년대에 들어서는 위기 담론의 강조점이 달라져 정치권력과 얼마나 거리를 두는가 하는 독립성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 낙천·낙선운동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시민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은 역설적으로 시민단체의 정치적 편향성을 둘러싼 논란을 초래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인터넷과 촛불을 앞세운 개인 시민 주체가 등장하면서 시민단체가 누려 온 ‘대의의 대행’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 담론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와 정부 간 거버넌스의 변동성이 커지고 취약한 재정 구조의 문제가 겹친 데다 정부의 노골적인 배제와 탄압까지 더해지면서 위기 담론은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렇게 시민 부재에서 독립성 상실로, 다시 ‘대의의 대행’ 지위의 상실과 재정 구조 문제가 겹친 복합 위기로 위기 담론의 강조점이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위기라는 말이 매번 서로 다른 실체를 가리켜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위기의 내용이 이렇게 계속 바뀌는 동안에도 그 위기를 진단하는 단위만큼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의 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언제나 시민단체라는 조직의 영향력과 신뢰라는 차원에서 진단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시민사회의 위기라 부르던 것은 대개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의 위기였다. 언론이 이 위기론을 상당 부분 과장하고 증폭시켜 왔다는 지적과 2010년대 이후 시민사회라는 장 전체는 오히려 팽창하고 다원화되어 왔다는 분석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민사회는 확장과 위기, 혁신을 동시에 겪는 가운데 전통적인 시민운동의 접경지대에서 새로운 시민 주체가 끊임없이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참여가 생겨나고 연결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장 전체, 곧 하나의 생태계로 시민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여기서 제기된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이 구도를 재확인해 준다.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까지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시민사회는 신속하게 연대기구를 결성해 광장의 목소리를 조직해 내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열기가 가라앉은 이후에는 다시금 그 에너지를 지속적인 참여와 조직적 재생산으로 이어 갈 통로가 부재하다는 위기 담론이 제기되었다. 1990년대에 등장했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진단이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소환된 셈이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그때는 운동 내부에 시민 참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운동 바깥에 이미 존재하는 시민의 에너지와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다시 시민사회는 항상 위기였는가 하는 질문을 곱씹어 보자. 매 시기 위기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해 왔다는 점에서 분명 상시적인 위기였다. 그러나 그 위기의 상당 부분은 시민사회를 몇몇 시민단체와 동일시해 온 우리의 고정관념이 만들어 낸 이야기였다. 시민사회의 재생산을 생태계 전체가 참여를 얼마나 순환시키는가 하는 문제로 바라보면 어느 한 단체의 쇠퇴도 생태계가 분화하고 새로워지는 하나의 국면으로 다시 읽힌다.
광장에 모였다 흩어진 에너지가 말해 주는 것은 연결 통로의 부재다. 시민의 참여 의지는 광장에서 이미 입증되었고 남은 과제는 그것을 이어 갈 통로를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시민 참여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느슨한 모임과 프로젝트형 결합, 이슈별 기부와 온라인 행동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참여를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 담는 플랫폼과 중간지원조직, 그리고 기성 시민단체가 문턱을 낮추어 새로운 주체와 협업하는 실험이 바로 그 연결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느슨한 참여는 더 깊은 연결, 즉 연대로 건너가는 입구이며 그렇게 형성된 연대가 다시 새로운 참여를 불러올 때 비로소 순환이 성립한다. 시민사회의 생명력이란 결국 이 순환을 지속하는 데 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2026-09-0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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