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넘는 초장수인은 왜 암에 잘 걸리지 않을까?
이병문 기자
수정 2026-09-03 10:30
입력 2026-09-03 10:30
일본 오사카대학 연구팀, ‘암 공격 면역세포’ 급증하는 장수 비밀 규명
암세포 죽이는 T세포 110세 이상서 급증…건강수명 연장에 새 이정표
인류의 오래된 꿈인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비밀을 풀 열쇠가 마침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100세 이상의 초장수자들이 일반인에 비해 암이나 만성 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 과학적 메커니즘이 일본 공동 연구진에 의해 새롭게 규명된 것이다.
오사카대 연구진을 중심으로 한 공동 연구팀은 최근 100세 및 110세 이상 초장수자 체내에서 암세포와 노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특수 면역세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초장수자들의 면역학적 특성을 연령대별로 구체적으로 추정해 냈다는 점에서 국제 학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사카대 하시모토 코우스케 교수 연구팀은 최근 게이오대, 이노우에 학술연구소 등과 함께 100세 이상 초장수자들의 생체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기술을 결합해 연령 증가에 따른 면역세포의 구성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한 결과, ‘CD4 양성 킬러 T세포(CD4+ Cytotoxic T Cell)’가 일부 특수한 환경에서 암세포나 노화된 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찾아내 사멸시키는 강력한 ‘킬러’ 기능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본래 CD4 양성 T세포는 다른 면역세포의 활성화를 돕는 ‘보조(Helper) T세포’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존 연구에서도 110세 이상의 ‘슈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에게서 이러한 CD4 양성 킬러 T세포가 대량 존재한다는 사실은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이 특수 세포가 정확히 삶의 어느 시점부터, 어떤 경로로 증가하기 시작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적 권위의 학술지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100세 선티네리언 10명과 110세 슈퍼센티네리언 10명을 포함한 총 28명의 혈액 샘플을 정밀 분석했다. 혈액 내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전체 T세포 중 CD4 양성 킬러 T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을 측정했다. 또한 분석의 신뢰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약 1,500명 규모의 공공 데이터베이스(DB)와 실험 데이터를 통합한 뒤, 최첨단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적용해 연령대별 면역 체계 변화 추이를 통계적으로 모델링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90대까지는 전체 T세포 중 CD4 양성 킬러 T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불과 수 퍼센트(%) 수준의 낮은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100대에 접어들면서 이 비율은 약 10%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했으며, 110대 이상의 초장수자군에서는 전체 T세포의 약 20%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폭등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아직 특정 병원체를 접하지 않은 미성숙 상태의 ‘나이브 T세포(Naive T Cell)’ 비중은 대폭 감소했다.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신체의 면역 시스템이 단순 방어 모드에서, 위험 인자를 직접 타격하는 ‘정예 특수부대’ 중심으로 체질을 완전히 개선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100세를 기점으로 이러한 면역계의 거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연구를 이끈 하시모토 교수는 체내에 오랫동안 잔류하는 특정 요인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시모토 교수는 “연령이 극도로 증가함에 따라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제거되지 않는 이물질이나 지속적인 미세 염증 반응이 존재할 수 있다”며 “이러한 잔류 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체내 면역계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CD4 양성 킬러 T세포를 대량으로 분화·증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즉, 만성적인 자극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신체 스스로가 암이나 노화세포를 강력하게 제거할 수 있는 면역 방어막을 극대화한다는 해석이다. 초장수자들은 이처럼 특이적으로 변모한 면역계 덕분에 암 발병률을 현저히 낮추고 극단적인 고령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연구는 인류의 ‘건강 수명(Healthy Life Span)’을 연장하는 데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의 항암 치료나 면역 치료가 주로 외부 약물에 의존했다면, 100세 장수자들의 체내 메커니즘을 모방해 스스로 암세포를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신개념 면역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후속 연구가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신체 조직별 세포 기능의 차이 규명(혈액뿐만 아니라 실제 장기나 신체 조직 내에서 CD4 양성 킬러 T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 △젊은 층과의 비교 분석(일반 성인 및 젊은 층의 체내 면역 기능과 비교하여 T세포의 ‘킬러화’를 유도하는 핵심 분자 기전 탐색) △항암 및 항노화 치료제 개발(CD4 양성 킬러 T세포의 활성화를 인위적으로 촉진하는 차세대 면역항암제 및 노화세포 제거제(Senolytics) 연구) 등이다.
하시모토 교수는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신체 각 조직별 세포의 세부 기능 차이는 물론, 젊은 사람들의 체내 기능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보다 정밀한 장수 메커니즘을 밝혀낼 것”이라며 “이 연구가 향후 고령화 사회에서 암과 만성 질환을 예방하고 건강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늙어가는’ 방법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이 이번 오사카대 연구팀의 성과를 통해 한 걸음 더 진전하게 됐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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