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된 다섯 눈물… 스스로를 구원하다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9-02 00:10
입력 2026-09-02 00:10
‘무감서기’로 돌아온 기무간
한양무 기반 서울시무용단 새 작품흑·청 조안무, 백의 무용수로 올라
한국무용 기반의 컨템퍼러리 지향
하고픈 걸 할 뿐… 더 많은 시도 원해
굿 의뢰자의 즉흥적인 춤 ‘무감서기’
스스로 복 부르는 행위… 답은 내 안에
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무용단은 2026년 라인업을 공개하던 자리에서 무용수 기무간(33)의 이름을 먼저 꺼냈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초연한 ‘미메시스’에 객원 무용수로 참여해 태평무와 장검무를 췄고 지난 6월 강동아트센터로 옮겨간 무대에도 다시 섰다. 봉산탈춤을 재구성한 ‘에피소드:2, 탈춤’에서 전통과 현대를 오갔고, 연출과 안무를 맡은 ‘낙원을 찾아서’로 네 개 도시를 돌기도 했다. 세 번째로 그를 호명한 자리는 오는 10~13일 대극장에 올리는 신작 ‘무감서기(Gut: Whispering Steps)’다.
그가 불리는 이유는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쌓은 화제성만이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는 컨템퍼러리 댄스를 구현하는 서울시무용단의 방향과 겹치는 자리에 있다.
지난달 27일 세종문화회관 ‘무감서기’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컨템퍼러리로 옮겨가는 이유를 묻자 “더 많은 걸 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다른 걸 시도하면 ‘저게 무슨 한국춤이냐’는 말이 돌아온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한 컨템퍼러리를 지향한다고 매번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졌다”고 털어놨다. 이어 “무엇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감서기’는 한양굿을 바탕에 두고 음양오행의 방위를 나타내는 오방색(청·적·황·백·흑)을 다섯 눈물로 치환해 전개한다. 눈물을 통한 해소와 위로의 끝에는 한양굿의 한 부분인 무감서기가 있다. 의뢰한 이가 무녀의 옷을 받아 입고 즉흥으로 춤추는 행위로, 복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맞이하는 과정이다.
윤혜정 서울시무용단장은 “누군가 나를 대신 구원해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굿거리 12마당의 개념만 빌려왔을 뿐 굿을 재연하지는 않는다. 색깔당 무용수 아홉 명이 부채와 방울로 각 색의 표정을 만들고, 마지막에 모두가 어우러진다. 음악은 이하느리, 미디어아트는 장철수 영화감독이 맡았다. ‘백의 눈물’에서는 판소리 이수자 김율희가 무대에 함께한다.
꼬레오 제공
기무간은 ‘흑의 눈물’과 ‘청의 눈물’에 조안무로 참여하고, ‘백의 눈물’에서 무대에 오른다. 그는 조안무의 자리를 “안무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잘 나오도록 돕는 역할”로 설정했지만 무대 위에서의 계획과 약속, 디테일에 대한 철학은 명확하다.
“각자의 즉흥이 돋보이려면 그 앞을 치밀하게 약속하고, 무용수들이 충돌하지 않도록 동선 계산을 훨씬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극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무용수들의 손가락 움직임까지 신경 쓰는 것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성도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백의 눈물’은 그가 구현하는 몸짓과 표현을 그대로 보여준다. 흰 고깔에 긴 도포 차림으로 옷자락을 휘날리는 움직임은 한국무용에 가깝다. 벗은 옷을 수건처럼 날리는 장면에선 몸의 움직임이 더욱 자유롭다. 고개를 툭툭 떨구는, 보일 듯 말 듯 한 무녀의 몸짓은 그가 찾은 디테일이다.
오는 11월에는 서울 아르코예술극장에 자신의 신작 두 편을 나란히 올린다. 소극장에서 ‘아르코 댄스 업:라이즈(UP:RISE)’ 선정작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를, 대극장에선 서울무용제 경연대상 부문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를 선보인다. “나를 들쑤시고 뒤흔들던 것들을 보통 제거하거나 극복하려 하잖아요. 그걸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이라는 걸 인정한 상태, 거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전에 써둔 글을 정리하며 구상했다는 작품에 담은 이야기와 사랑은 연인의 감정이 아닌, 인간의 온기다. 탈색한 눈썹에 날카로운 눈매로 무표정하게 설명하는 작품은 정반대의 온도를 품고 있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09-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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