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일상 속 얼굴들…소소하게 지나간 시간에 있었네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8-28 00:54
입력 2026-08-28 00:54

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220쪽/ 1만 7000원

깊고 넓게 확장한 삶에 대한 시선
각각의 표정으로 쓴 김애란표 산문
김애란 작가. ©이승재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 가난과 결핍을 겪는 각각의 ‘나’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돌파했고, ‘바깥은 여름’의 ‘나’들은 상실 이후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낸다.

‘안녕이라 그랬어’에선 사회 외곽에 살아가는 인물들이 온기와 연대를 나눈다. 허구의 인물을 앞세워 동시대의 결을 촘촘히 직조한 소설가 김애란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두 번째 산문집을 내놨다.




책은 크게 ‘사람의 얼굴’과 ‘이야기의 얼굴’, ‘일상의 얼굴’로 구분했다. 작가는 오랫동안 들여다본 세 주제 안에서 시선을 깊고 넓게 확장해 나간다. ‘사람의 얼굴’에선 기억과 말을 잃어가는 아버지 곁에 머문다.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하나의 완결된 서사, 고정된 판본으로”(‘없는 자리’ 중) 닫아 둔 작가는 용기를 내 그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70여년 삶의 기록은 정갈하고 간결하지만 아름다운 산문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얼굴’에선 중학생 시절 야간자율학습 교실에서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맛본 희열에서 출발한다. 완급을 조절하다 절정에서 친구들을 일제히 비명 지르게 만들던 그날의 감각을 작가는 “‘듣는 쾌락’과 ‘말하는 쾌락’이 일치하는 느낌”(‘나의 유령 문학 유랑’ 중)이라 부른다. 이야기의 권력에 기꺼이 휘둘리면서 그 힘을 써보고 싶었던 충동은 작가의 원형질로 남았다. 그 충동은 세월을 지나 “추상이나 관념이 아닌 구체와 실감의 영역”으로서 문학을 깨닫게 하고 “예감과 공감, 만감으로 나아가게”(‘그랬다고 적었다’ 중) 하는 ‘삶의 자세’로 옮겨갔다.



부분일식에 들뜬 하루, 코로나19가 몸에 새긴 고립의 감각, 세월호 이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을 ‘일상의 얼굴’에 나란히 놓았다. “타인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지겨워하면서도, 타인을 그리워하는 요즘”(‘코로나 극장전’ 중)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리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극복하게 해주세요”(‘종말은 가볍고 투명하게’ 중)라고 기도한 문장을 보면서 진정한 신은 ‘삶’일지 모른다고 사유한다.

한여름에 부친 ‘작가의 말’에 그는 십여 년 전 “시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물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삶이 여전히 여러 얼굴로 같은 질문을 건네온다고 적었다. “은유와 비유로 이뤄진 구멍 많은 그물”을 “논리와 방어로 다 메워 커튼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다짐도 한다. 소소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 각각의 표정을 써 내려간 김애란의 산문은 어느새 우리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08-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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