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장식한 ‘메멘토 모리’… 죽음의 손 잡고 오늘을 산다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08-28 00:53
입력 2026-08-28 00:53

죽음의 책
조애나 에번스타인 엮음/ 김승진 옮김
오월의봄/ 372쪽/ 5만 4000원



르네상스 초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1533)에는 잉글랜드 주재 프랑스 대사와 성직자가 나란히 서 있다. 각각 세속의 부와 권력, 지성과 영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 사이 선반에는 천구의, 다면체 해시계, 수학책 등 당시 인류가 이룩한 학문과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도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하단에 길게 왜곡해 그린 해골이다. 정면에서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옆으로 비껴서서 바라보면 비로소 온전한 형태가 드러난다. 해골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의 상징이다. 작품은 인간이 아무리 막강한 권력과 지식을 쌓더라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서늘하게 일깨운다.

죽음과 관련된 유물과 예술품을 수집해 온 세계적인 기록연구사이자 작가인 조애나 에번스타인이 엮은 ‘죽음의 책’은 시각 예술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사회사와 철학적 질문을 탐구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누구나 죽음의 필멸성을 알고 있지만, 죽음을 염두에 두며 살아가는 이는 드물다. 죽음은 늘 곁에 있지만, 공포와 회피의 대상이 되고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곤 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하면서 점점 죽음은 우리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됐다. 책은 “죽음을 의료화하는 문화가 죽음의 과정을 살균하고 표백한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책에 실린 기원전 600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 1000여 점은 죽음이 인류 역사에서 꼭 공포와 슬픔의 대상만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죽음은 때로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에로틱한 쾌감의 대상이 된다. 또 극한의 숭고미를 재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멕시코의 ‘망자의 날’에는 슬픔과 통곡 대신 화려한 색채와 음악, 음식으로 죽은 이의 영혼을 맞이하는 축제가 열린다. 이런 축제가 가능한 것은 삶과 죽음은 분리될 수 없는 한 쌍이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여전히 교감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 작품이 ‘메멘토 모리’를 변주하며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닌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며, 소멸을 응시할 때 비로소 남은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현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윤수경 기자
2026-08-28 17면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