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정치가의 실천 이성
수정 2026-08-27 01:02
입력 2026-08-27 00:28
적대와 혐오 판치는 양당 정치
지지자 흥분시켜 공생하는 관계
고함과 모욕은 정치 아닌 무례
품위, 신념 겸비한 정치인 절실
최혁진 의원과 김태규 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손가락으로 상대를 겨냥하며 침묵을 강요하는 영상을 보았다. 적의에 찬 시선에 놀랐다.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공론(公論)을 가리켜 “강제 없는 대화 속에서 더 나은 논증과 숙의의 힘으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정의한 바 있다. 우리 국회에는 그런 공론의 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정치보다 더 강력한 교육 효과를 가진 것은 없다. 좋은 정치는 좋은 시민을 만들고 나쁜 정치는 나쁜 시민을 만든다. 앞서 언급한 두 의원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라는 식의 악행을 권장하는 교육자 역할을 했다. “토론을 통한 공동 통치를 뜻하는 의회주의”를 파괴하는 역할도 겸했다. 이 두 의원뿐일까. 그럴 리 없다.
지금의 양당제에서는 적대와 혐오밖에는 나눌 게 없다. 적대와 혐오로 정치인들이 공생하고 공영한다. 양당은 지지자를 흥분시켜 편익을 얻는 정치 계급의 집합소다. 공적 자산을 탕진하고 정치를 망치는 일로 위세를 부리는 신흥 귀족들이다. 그들은 공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정치를 한다.
인간은 나쁜 사람보다 위선적인 사람을 더 싫어한다. 나쁜 사람을 견제하고 회피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나쁘다는 것을 쉽게 알기 때문이다. 위선적인 사람은 그러기 어렵다. 지금의 집권 세력이 그런 경우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힘과 권력을 악용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정의로운 피해자’인 척한다. “권력의 크기만큼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의 윤리가 없으니, 무슨 말을 해도 신뢰가 안 간다. 그러는 사이 ‘나쁜 정당’의 전형이라 할 국민의힘이 몰락을 피해 재기를 노리게 되었다. 위선과 나쁨이 서로에게 정당성을 제공하는 비극적 양당제다.
정치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정치의 필요성’은, 이익에 있어서든 열정에 있어서든 우리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실존적 불일치’에서 발원한다. ‘정치의 가능성’은, 공동체 없이 혼자만으로 ‘목적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윤리적 일치’에서 발원한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일,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굶주린 아이를 보고도 연민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남을 돕고 싶어 하지, 남을 해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가리켜 “동등한 자들이 벌이는 공동의 시민 사업”이라 했다. 지향하는 가치는 공유하되 방법론을 두고 다퉈야 좋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 정치다. 소득, 직업, 지역, 성별, 취향, 이념 등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인간은 공존하고 협동하는 삶을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긴다. 바로 그 일에 소명을 가진 “특별한 직업”이 정치가다.
진보든 보수든 여든 야든, 지지자만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면 혁명이나 반란에 나설 일이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를 찬미하며 상대를 제거하고 척결하겠다는 것은 지독한 형용모순이다.
진짜 진보나 진짜 보수라면, 반(反)보수나 반진보일 수 없다. 상대보다 더 설득력 있어야 하고 예의와 실력을 갖추는 게 서로가 할 일이다. 상대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진보나 보수는 사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저 무례한 사람들일 뿐이다. 최소한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무능력과 무책임을 위장하는 수준은 넘어야 정치가라 할 수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경북 안동시 시의원 선거에 나선 녹색당 허승규 후보의 당선 인사는 특별했다. 그는 안동시를 대표했던 전임 시의원들을 한 사람씩 거명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자신과 경쟁했던 후보들에게도 경쟁과 함께 배움의 기회를 준 것에 감사했다. 그 이름 가운데는 국민의힘 의원도 무소속 의원도 민주당 후보도 있었다. 증오와 적대의 정치에 지친 이들에게 허 의원의 당선 인사는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무례한 이들에게 맡기기에 인간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너무 소중하다. 품위와 신념을 같이 가진 좋은 정치가는 그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치보다 중요한 공공재(公共財)는 없다. 실천 이성을 가진 정치가를, 필자는 열망한다.
박상훈 정치학자
2026-08-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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