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으로 펼쳐 낸 시대의 모순과 불안

윤수경 기자
수정 2026-08-26 01:24
입력 2026-08-26 01:24
미술계 틀 깬 공성훈 작가 5주기
호반아트리움 ‘숭고의 아이러니’
개념 미술부터 정통 회화까지관성 피해 구축한 폭넓은 세계
초기작·대표작 60여점 총망라
보관 문제로 접하기 힘들었던
‘블라인드’ 시리즈 재제작 선봬
‘자판기’ 현대 작가 20여명 참여
도준석 전문기자
“항상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렸다면 실력이 늘기라도 할 텐데 작업이 매번 바뀌다 보니 뭔가 쌓이질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걸레를 쥐어짜듯 작업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제 작업에 관성이란 없었으니까요.” (공성훈 작가, ‘미술 관계자의 변명- 나와의 인터뷰’ 중에서)
개념미술부터 키네틱 아트, 설치, 회화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미술계 관성을 깨던 작가, 고유한 스타일 없이 존재하며 스스로를 화가 아닌 미술관계자라고 칭하던 공성훈(1965~2021) 작가의 작고 5주기에 그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펼치는 전시가 열린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년 제19회 이인성미술상을 받았던 작가는 2021년 암 투병 중 별세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호반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경기 과천시 호반아트리움은 ‘공성훈: 숭고의 아이러니’를 26일부터 선보인다고 밝혔다. 전시에는 그의 대표 회화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과 스케치, 메모 등 작품과 아카이브 60여 점이 나온다.
작가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학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에 전자공학과에 편입했다. 그리고는 다시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발이 지상에서 한 30㎝쯤 떠서 다닌 것 같았고 졸업 후 화가가 되려고 하는데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야 할지 막막했다”며 “뭔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미술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공학도로서의 면모가 느껴지는 작품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다이어그램이 관람객을 맞는다. 1990년대 금호미술관에서 전시했던 ‘예술은 비싸다-입장료 받기’의 아이디어 스케치다. 과거 이 작품은 여러 메시지가 프로그래밍된 전광판과 입장료를 넣는 구멍, 입장료의 투입을 감지하는 센서, 음향회로, 두 개의 예 아니오 버튼으로 구성돼 관람객이 응답해야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했다. ‘동전을 넣으시오’로 시작되는 다이어그램을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나요?’, ‘예술은 비싸기 때문에 동전을 더 넣으시오’ 등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관객은 여기에 응답하며 스스로 ‘예술을 얼마의 대가를 치르면서 즐길 것인가’ 등을 고민하게 된다.
작품 보관 등의 문제로 접하기 어려웠던 ‘블라인드’ 시리즈를 다시 제작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블라인드 작업은 블라인드 날개에 형광 페인트, 알루미늄 테이프, 모터의 왕복 운동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과 날개의 형태를 보여준다.
호반아트리움 관계자는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동시에 인공적인 빛을 투사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 프레임은, 공성훈의 회화를 관통하는 ‘세상을 인식하는 프레임’의 기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선보였던 ‘예술작품 자판기’ 역시 현대 작가 20여명의 참여로 새롭게 제작했다. 당시 작가는 담배자판기에 담배 대신 작품을 넣어서 전시장 판매를 시도했다. 작품의 크기도 담뱃갑의 크기로 제한하고 당시 젊은 작가들, 동료 작가에게 그림을 받아 그 속에 넣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이 작품에 참여했던 작가부터 작가와 인연이 있던 작가들이 제작에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도시와 자연이 뒤섞인 낯익은 풍경에 불안과 긴장을 심은 공성훈식 심리적 풍경도 만날 수 있다. ‘개’ 연작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서글픈 초상을, ‘담배 피우는 남자’, ‘돌던지기’ 등에서는 대자연 속에서 고작 담배를 피우거나 무심히 돌을 던지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호반아트리움 관계자는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 실존의 초라함이 자아내는 묘한 불협화음에서 공성훈식 ‘숭고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면서 “이번 전시가 익숙한 풍경 속에 담긴 동시대의 현실과 인간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윤수경 기자
2026-08-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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