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게 ‘소년이 온다’ 번역을 맡길 수 있을까?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6-08-20 17:10
입력 2026-08-20 17:10
손현정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20일 연세대 AI 혁신연구원에서 AI 문학 번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오경진 기자


문학의 언어는 다층적이고 복잡하며 또한 함축적이다. 사전에 있는 뜻을 토대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원문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언어 기계’인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어떨까. 제미나이, 챗GPT, 클로드 등 AI도 문학을 번역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사이의 거리는 확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안고 20일 서울 연세대학교 AI혁신연구원 세미나실에서 ‘AI 번역의 문학 번역 성능 평가 및 메타 분석’ 세미나 제1차 워크숍이 열렸다.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불어불문학과·노어노문학과·한국학협동과정 BK21 예비교육연구단으로 구성된 ‘연세 AI 문학번역 연구단’ 주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 뒤 이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현정 연세대 불문과 교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딥엘(DEEPL)로 번역한 뒤 결과를 비교했다. 한국어로 된 작품을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각각 옮겼으며 평가 점수는 언어마다 달랐다. 총 122점 만점으로 독일어 번역에서는 제미나이(85점)가 제일 높았고 클로드(57점)가 제일 낮았다. 프랑스어에서도 제미나이가 72점, 클로드가 55점으로 평가됐다. 러시아어에서도 제미나이가 100점으로 가장 높았고 클로드가 55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영어에서는 챗GPT가 85점으로 제일 높은 점수를, 딥엘이 72점으로 최저점을 받았다.

손 교수는 “문학 번역에서는 통계적 번역보다도 문학작품의 내용과 한국어의 특성 그리고 문학 관련 전문적 지식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훈 고려대 불문과 교수가 20일 연세대 AI 혁신연구원에서 발표하고 있다. 오경진 기자




이어 이영훈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한국 문학작품의 AI 번역 평가를 위한 제언’이라는 발표를 통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한 결과물을 놓고 오늘날 문학 번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했다.

특히 ‘채식주의자’로 한강이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뒤 불거졌던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 둘러싼 논쟁을 지적하며 “번역가의 번역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보려는 관점이 중요하다”며 “번역 비평은 번역가의 기본 자질과 기획력 그리고 번역의 지평까지 들여다보고 엄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스의 번역 이론가 앙트완 베르만의 말을 빌려 원문과 번역을 대조할 때는 “번역자가 온전한 글쓰기를 실행하여 진정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또한 번역자가 자민족중심의 덮어씌우기식 번역을 하지 않고 원문을 존중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일선 연세대 문과대학장(독어독문학과 교수)은 “문학 번역에서는 인간 번역가가 시도하는 노력이 그만큼 성과를 내는지 확신할 수 없고 이는 AI 번역에도 해당된다”며 “이는 계량적인 유사성만으로는 문학의 심연을 온전히 옮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워크숍은 AI가 도달할 수 있는 효용을 살피는 동시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창의적 존엄을 우리가 과연 주장할 수 있는지 묻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경진 기자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