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의 역사프리즘] 이제야 소녀상 곁으로 돌아온 수요시위

수정 2026-08-19 01:45
입력 2026-08-19 01:10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6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75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소녀상 주변 바리케이드를 철거한 후 환호하고 있다.
홍윤기 기자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766차 수요시위가 19일 정오에 열린다. 1992년 1월 8일부터 34년을 이어온 집회다. 오늘의 시위가 각별한 건 횟수 때문이 아니다. 기림의 날을 막 지난 이 집회를,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바로 옆에서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년여 동안 이 풍경은 당연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를 부정하는 단체들이 소녀상 옆에서 집회를 이어가면서 수요시위는 자리를 옮겨야 했다. 올해 2월 11일 제1739차 시위부터 수요시위는 4년 3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증언했다. 40년이 넘는 침묵을 깬 이 증언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세계가 호응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일, 역사의 전모를 밝히고 과거 청산의 법리를 검토하는 일, 소설과 영화와 연극으로 그 비극을 되짚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국제기구들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유엔 인권소위원회의 맥두걸 특별보고관은 1998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전시 성폭력을 처벌하지 않는 성평등 결여의 국제법을 비판하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피해자 개인에 대한 배상을 권고했다.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일본 국가가 저지른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일본 천황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주목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국제 인권 규범의 수혜자가 아니라 그 형성에 참여한 당사자라는 사실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가 국제 연대에 나서던 1990년대 초, 전쟁 중인 보스니아에서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력이 일어났다. 전쟁범죄로서의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열린 1993년 빈 세계인권회의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가 간 정치 갈등을 넘어 보편적인 전시 여성 인권 의제이자 전쟁범죄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러한 세계적 자각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자국의 국가권력에 맞선 시민들과 폭력의 피해자들이 국경을 넘어 연대하며 이끈 물결인 ‘인권혁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 홀로코스트가 특정 민족의 비극을 넘어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것이 인간 존엄에 대한 국가적 범죄라는 보편적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그것이 갖는 보편성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세계 과거사 청산의 물줄기를 바꾸었고 전시 성폭력은 정의롭지 못한 폭력이며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세계 여성 인권운동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다.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 1000회를 맞아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3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세워졌고 이후 소녀상은 ‘Statue of Peace’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며 세계 곳곳에 서 있다. 수요시위와 함께 전시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한국 시민이 세계 시민으로서 연대하는 시민운동의 상징이 된 것이다.

증언의 역사에는 부정의 역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일본에서는 1997년도판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가 기술된다는 소식에 반발한 우익 세력이 1996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결성했고 이 흐름은 훗날 아베 정부 시기의 본격적인 역사 수정주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2014년 아베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부인하려 하자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역사 세탁”이라는 사설로 응답했다. 2021년에는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계약의 산물로 규정한 논문을 발표했다가 세계 역사학계의 전면적인 반박에 직면하기도 했다. 역사 부정이 오히려 이 문제의 보편성과 세계성을 확인시켜준 셈이었다.

역사 부정의 논리는 한국에서도 자라났다. 2019년의 ‘반일 종족주의’ 현상이 보여주었듯 그것은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한일 우파 간 네트워킹 속에서 형성된 흐름이었다. 소녀상 곁에서 피해자의 역사를 부정하던 집회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이 현상을 마주하며 새삼 되짚게 되는 것은 하나의 역사가 한 사회의 보편 기억으로 자리 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 번의 공인으로 완결되지 않으며 부정의 도전에 맞서 끊임없이 재확인되어야 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지난 4년여의 시간은 그 과정이 광장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장면이었다.

생존 피해자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증언의 시대가 저물고 기억의 시대가 오고 있다. 기억의 시대에도 부정과 망각은 형태를 바꾸어 반복될 것이고 그때마다 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다시 던져질 것이다. 오늘 소녀상 곁에 다시 모인 시민들은 바로 그 물음에 실천으로 답하는 증인들이다. 35년 전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광장에 섰을 때 그러했듯, 답은 언제나 광장에서 소녀상 곁을 지키는 시민에게서 나올 것이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2026-08-1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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