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지하에 펼쳐질 난장… “무슨 일 벌어질지 무용수도 관객도 몰라요”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7-22 11:29
입력 2026-07-21 23:50

컨템퍼러리 무용작 ‘킬링 하이라키’ 안무가 김관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킬링 하이라키’를 공연하는 김관지(왼쪽) 안무가와 표혜인(가운데), 정필균(오른쪽) 무용수. 세종문화회관 제공


‘킬링 하이라키’는 위계(Hierarchy)를 전복시키는(Killing) 시도다. 동시에 ‘킬링 파트’(핵심 구간) 같은 활용처럼 ‘위계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한 방’이 될 수도 있다. 안무가 김관지는 그런 중의적인 제목 아래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 S씨어터를 놀이마당이자 신전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난장으로 바꿔 놓을 참이다.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관지는 “이곳에서 제가 난장을 일으킨다는 게 가장 웃긴다”면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6’의 무용 프로그램인 ‘킬링 하이라키’(24~27일)는 초인공지능과 결합한 근미래 인류라는 SF적 설정을 즉흥이라는 한국 춤의 어법으로 풀어낸 이머시브(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이머시브 공연의 절정’으로 불리는 ‘슬립노모어 서울’에 출연한 표혜인(한국무용)과 정필균(현대무용), ‘스테이지 파이터’로 얼굴을 알린 김재진 등 전문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정해진 대본이나 안무 동작은 없다. 관객과 한 공간에서 뒤섞였다가 이들을 이끌기도 하면서 순간순간 즉흥으로 호흡할 뿐이다. 김관지는 미래 사회의 불평등을 머리칸과 꼬리칸으로 그린 영화 ‘설국열차’에 빗대 “위계는 죽여도 다시 태어나고 계속 재생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객들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 노출시켜 자기만의 관점과 해석을 낳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위계’에 대한 고민은 그의 성장기 경험에서 출발했다. 전통예술영재원과 선화예중·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로 이어지는 정통 코스를 밟았다. ‘선생님’의 행동까지 그대로 모사하는 한국 무용의 수직적 전수 구조는 매혹인 동시에 굴레였다. 그는 “한국 춤의 근본적인 멋은 즉흥성인데 전수 방식이 스스로 한계를 짓더라”고 했다. 지난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의 대형 문을 통째로 열어 극장을 광장으로 바꾼 ‘별도깨비’, 은박지와 레이저를 결합한 공연을 잇달아 선보이고 올 초 봉산탈춤과 현대무용을 뒤섞은 ‘에피소드:2, 탈춤’에 참여한 것도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안무가 김관지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번 공연은 객석이 아니라 로비에서 시작된다. 무용수들이 관객을 이끌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고, 무대 위에도 객석이 놓인다. 관객은 은박지와 플래시를 손에 쥐고, 채찍과 마이크를 든 김관지는 이들을 끌어안았다가 밀어낸다. 대본 없는 3회 공연은 매번 다른 ‘현상’이 된다.

출연진에게도 이 무대는 해방이자 시험이다. 표혜인은 “무용수로서 ‘쓰임’에 대한 본능이 튀어나왔다”면서 “공간과 관계, 몸이 맞닿는 것, 은박지의 소리, 이 순간을 느끼는 게 놀이의 방법이더라”고 했다. 정필균 역시 “퍼포머로 있을지, 실존하는 정필균으로 있을지 순간마다 판단해야 한다”며 이 예측 불가능성을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김재진은 물이 닿으면 녹는 소재로 만든 셔츠를 입고 무대를 돌아다닌다. 이 역시 어떤 현상을 빗어낼지 모른다.

무용수 8명에 음악감독 이예찬과 악사 8명이 힘을 보탠다. 방울과 징, 꽹과리, 판소리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무당의 세계를 오늘의 재료로 번역해온 오랜 방법론이다. 칼과 지전(종이돈), 거울 같은 무구(巫具)는 은박지가 대신하고, 조명기는 신의 눈처럼 무대를 내려다보며, 레이저가 촛불 자리를 채운다. 이 모든 수단으로 도달하려는 곳은 춤의 원점이다. “춤은 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끼면서 추는 거예요. ‘클럽 왔으니 춤춰야지’ 하면 춤이 안 나오잖아요. 역전된 춤의 방향을 되돌리는 게 소망입니다.”

농인 관객과 함께하는 배리어프리 운영도 작품의 일부다. 공연은 24·25일 오후 9시, 27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린다. 26일 오후 4시에는 관객 참여 워크숍이 마련된다.

최여경 선임기자
2026-07-2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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