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칼럼] 개헌으로 견제와 균형 복원해야

수정 2026-07-06 00:25
입력 2026-07-06 00:25

민주화 이후 혼란 극복할 개헌
내각불신임권으로 대통령 견제
양원제로 상상력과 이상의 조화
지속가능한 제도만 생명력 유지

1948년 7월 17일, 선조들은 인민민주주의와의 갈등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이념적 표상으로서의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했다.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길에 새걸음으로 발맞추리라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제헌절 노래, 정인보 작사·박태준 작곡) 4대 국경일의 하나로 상찬되던 제헌절은 무휴일의 수모를 거쳐 2026년에 공휴일로 제자리를 되찾았다.

헌법은 그간 파란과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둘렸다. 39년간 9번의 개헌과 5개 공화국을 거쳐야 했다. 1987년 체제에서 마침내 헌법의 안정을 구가한다. 5년 단임제로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장기집권은 사라졌다. 꿈에 그리던 평화적 정권교체가 다섯 번이나 실현됐다. 하지만 헌정의 불안정은 계속된다. 2024년 총선에서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국회 다수파를 형성하며 갈등이 심화됐다. 국회는 예산 삭감, 탄핵소추 의결,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권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으로 맞대응했다.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이 마주 오는 기차처럼 충돌하는 와중에 헌법이 정해 놓은 형식적·실질적 적법절차를 위배한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결국 탄핵과 파면으로 이어졌다. 민주시민의 호헌 의지로 헌정은 회복되었지만 엎어진 물을 도로 담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드러난다.

돌이켜 보면 87년 헌법 체제는 직선 쟁취에 매몰된 나머지 ‘야 8인 정치회담’으로 탄생한 속전속결의 결과물이다. 이에 따라 헌법에 잔존하던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다. 평화적 정권교체만 이룩하면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민주주의가 이 땅에 만개하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만 심화된다. 정권교체 이후에 펼쳐지는 밀물과 썰물 현상에 따른 이합집산과 정치적 앙가주망(engagement)은 예견하지 못한 참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온 나라를 정치적 옳고 그름의 소용돌이로 빨아들인다.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첫째, 파국에 이른 견제와 균형을 회복시켜야 한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으면 더욱 그러하다. 정부 내에서의 견제와 균형도 사라졌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은 대통령의 충직한 신하일 뿐이다. 대통령의 독주와 독선을 견제하기 위해 국회의 내각불신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독일은 의원내각제의 고질병인 정부의 불안정을 해소해 마침내 흡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 요체는 의회가 정부 불신임을 제기하려면 먼저 후임 총리를 선출하도록 한 건설적 불신임투표제다.

둘째, 단원제 국회는 이제 그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단원제 국회는 졸속과 독단이 횡행하지만 효율적이다. 단원제 국회의 난폭한 독주는 제왕적 대통령만이 제어할 수 있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과 단원제 국회가 함께하면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폭주와 독선만 넘쳐난다.

선진 민주국가는 한결같이 양원제를 채택한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기의 사상가인 부아시 당글라는 “하원이 공화국의 상상력(imagination)이라면, 상원은 공화국의 이성(raison)”이라고 했다. 젊고 역동적인 하원의원들은 생기발랄한 아이디어로 입법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하원의원들의 넘치는 상상력만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여기에 상원의원들의 이성적 성찰이 자리잡는다. 하원의원들의 패기에 찬 상상력이 오랜 경륜으로 쌓아 올린 상원의원들의 성숙한 이성과 조응할 때 비로소 의회는 스스로 그 본연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



끝으로 민주화 이후 제도 만능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화 이후 특검, 공수처, 중수청, 감찰관, 사법3법 등 갖가지 새 제도가 홍수를 이룬다. 제도는 지속 가능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헌정의 혼란 속에서도 그간 쌓아 올린 헌정사적 관행과 관습을 존중해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다소 결여한 구시대적 관행조차도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제도는 켜켜이 쌓인 역사적 퇴적층과 함께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2026-07-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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