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레클리스 상사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수정 2026-06-22 00:09
입력 2026-06-21 23:37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일대에서 6·25전쟁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좋을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중공군 제120사단이 임진강 고랑포 북쪽의 미 해병대 제1사단 제5연대를 기습한 것이다. 미국은 초반 일부 고지를 상실했지만 치열한 전투 끝에 되찾았다. 흔히 네바다 전초전투라 부른다.

호로하라 불리는 이 지역은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임진강의 최하류다. 강 북쪽에 고구려 호로고루, 남쪽에 신라 칠중성이 있는 것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중부의 최대 군사적 요충이었음을 알려준다. 6·25 개전 당시 북한 인민군 탱크도 호로하를 건너 양주를 거쳐 서울에 진입했다.


네바다 전투의 영웅이 군마(軍馬) 레클리스다. 제5연대 무반동총중대의 에릭 페데르센 중위는 서울에서 군수품 운반용 말을 찾다가 레클리스를 발견했다. 중위는 한국 소년 김혁문에게 자기 돈 250달러를 주고 말을 사들였다. 소년은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을 마련하고자 말을 팔았다. 애초 이름은 ‘아침해’였다.

레클리스의 임무는 75㎜ 무반동총 탄약을 고지로 나르는 것이었다. 레클리스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에서 탄약 상자를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레클리스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언론은 ‘한국의 작은 말이 미 해병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다뤘고 레클리스는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다. 레클리스의 명예 계급은 처음 일병에서 계속 승진해 상사에 이르렀다. 국립해병대박물관을 비롯한 미국 곳곳에 레클리스 동상이 건립됐다. 국내에도 고랑포구역사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레클리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의 저자 로빈 허튼이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방한했다는 소식이다. 레클리스는 라이프 지의 ‘미국의 영웅 100인’에 윈스턴 처칠, 마하트마 간디, 마더 테레사, 넬슨 만델라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의 6·25전쟁 영웅은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6-06-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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