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추천·비상임 체제… 방치된 컨트롤타워, 선거 참사 불렀다 [민주주의 망치는 선관위]

김주환 기자
수정 2026-06-11 00:52
입력 2026-06-10 18:16

2회 뒷짐진 자들의 합의체

관행 중심의 선관위 의사결정 구조
중앙선관위원 중 상임위원 1명 뿐
대법관·지방법원장 등 위원직 겸임

시도 선관위원장들 취임 한 달 안돼
13명 지방법원장·4명은 부장판사
본업 재판 업무에 현장 행정 공백
선관위 실질 권한 총괄은 ‘사무처’
폐쇄적 조직 문화에 외부 출신 ‘0명’
회의 없이 투표용지 매수 기준 변경

지자체 공무원들은 볼멘소리 커져
현장 핵심 업무 공무원에게 떠넘겨
“선관위는 통제 못하고 책임 회피만”
투표지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9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2026.6.9.
홍윤기 기자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 참정권을 훼손하는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일으킨 배경 중 하나로는 ‘텅 빈 컨트롤타워’가 지목된다. 선거 관리의 최종 책임자들이 본업을 따로 둔 채 회의 때만 모이는 ‘뒷짐 진 합의체’로 운영되다 보니 현장 관리도 안 되고 사후 대응도 엉망인 행정 참사를 키웠다는 것이다.

●뒷짐 합의체 운영에 사후 대응도 엉망


10일 선관위에 따르면 총 9명의 중앙선관위원 중 선거 업무를 전담하는 상임위원은 단 1명뿐이다. 지난 8일 지명 해제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포함해 8명의 위원은 모두 비상임이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중앙선관위는 대법관이, 시·도 선관위는 지방법원장이, 시·군·구 선관위는 지법 부장판사가 위원장직을 겸하는 게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대법원장이 중앙선관위 위원을 추천하지만 사실상 대법원장이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선출 권력이 아닌 사법부 구성원에게 선거 관리의 최고 권한을 일괄적으로 맡기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민석 서울시선관위원장 5일 사퇴

시도 선관위 사정도 마찬가지다. 17개 시도 선관위 중 12곳의 위원장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의 법원장이고, 나머지 4곳의 위원장은 지방법원장이 추천한 해당 지역 고등법원의 수석부장판사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민석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지난 5일 사퇴했다.

이들 모두는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시점에서 선관위원장직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연의 재판 업무와 법원 행정를 수행해야 하는 위원장들이 선관위 일선 현장의 행정 공백을 사전에 감지하거나 밀착 통제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였던 것이다. 결국 위원회는 정기 회의에 잠시 참석해 실무진이 올린 안건을 사후 추인하는 역할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법원장이 취임한 뒤 스스로를 위원으로 추천해 위촉된 후 형식적인 호선 절차를 거쳐 위원장에 취임하는 절차도 그동안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선관위 관계자는 “법적으로 이른바 ‘셀프 추천’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17개 시·도 선관위 홈페이지 중 일부에서는 위원장의 선출 이유를 ‘호선’으로 기재했지만, 대부분은 ‘법원장 추천’을 그대로 남긴 채 수정하지도 않을 만큼 지방법원장의 선관위원장 취임은 마치 ‘당연직’처럼 여겨져 왔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선관위원장도 모두 해당 지역 법원의 부장판사급들로 채워져 있는 상황이다.

컨트롤타워가 현장과 분리되면서 선관위의 실질적인 인사, 예산, 행정 권한은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로 온전히 집중되는 기형적 현상이 발생했다.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상임위원 전원이 선관위 내부 출신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사실도 이 구조적 폐쇄성을 보여준다. 선관위법상 법관·검사·변호사 5년 이상 경력자나 행정학·정치학·법률학 부교수 이상 경력자도 상임위원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외부 인사 없이 내부 인력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 “개헌 없이도 제도 개선 가능”

전문가들은 ‘땜질식 인력 운영’이 장기간 방치된 핵심 배경에 바로 이 무너진 권력 구조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 이해충돌과 함께 직무에 전념할 수 없는,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관행적으로 해 온 것이 문제”라며 “제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구멍이 뚫여 있으므로 개헌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위원회의 견제가 느슨해진 사이 사무처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형성됐고, 결국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관리 부실 사태를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승수·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2월 10일 별도 회의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투표용지 인쇄 매수의 하한 기준을 기존 유권자의 60%에서 50%로 낮췄고, 같은 달 24일에는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관련 사무편람도 동일하게 개정했다. 위원회 의결은 물론 공식 회의조차 한 번 없이 사무처 내부 2인의 결재만으로 핵심 선거 관리 기준이 바뀐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이날 서울시선관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선관위는 중앙에서부터 광역 시도, 기초 시군구까지 방대한 조직을 유지하면서도 정작 선거 현장의 핵심 업무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떠넘겼다”며 “그 결과, 현장을 모르는 선관위,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선관위, 사고가 터지면 책임을 회피하는 선관위가 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환·김서호 기자
2026-06-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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