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정치에 대한 냉소처럼 들렸다. 그러나 곱씹어 보니 그 질문은 정권이 아니라 규칙을 향하고 있었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보다 어떤 규칙 아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 질문은 정치가 놓치고 있는 통합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통합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 일도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통합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제도가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같은 규칙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다. 그래서 통합의 출발점은 설득이 아니라 인정이다. 그리고 그 인정은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국민통합비서관으로 일하며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국민을 만났다. 청년들은 미래를 걱정하고 자영업자들은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국가의 약속과 원칙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모인다.
“이 사회의 규칙은 공정한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되고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생각의 차이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결과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규칙이 누구에게는 다르게 적용되고 노력과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공동체보다 경쟁자를 먼저 보게 된다. 불신은 대화의 자리를 좁히고 다름을 인정할 여유마저 빼앗는다.
그래서 공정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를 만드는 예측 가능성의 문제다. 신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공정한 규칙이 반복해서 지켜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다.
출발선의 차이를 외면하지 않고 격차를 보완하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며 누구도 출신과 배경 때문에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 역시 공정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조건이다.
정치를 하며 깨달은 것도 결국 같은 사실이다. 국민의 삶은 진영의 구호보다 훨씬 복잡하다. 청년의 불안도,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어르신의 걱정도 어느 한쪽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진영의 정책인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면 쓰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통합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의 삶 속에서 공정이 체감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일 때 공존이 가능해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규칙 아래 존중받는 경험이 반복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끝내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생각이 달라도 같은 규칙 아래 존중받을 수 있다는 믿음만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