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민에, 역사에 죄를 짓지 말아야

수정 2026-05-12 01:33
입력 2026-05-12 00:34

좋은 평가 받는 정치인이 드문 시대
국민 불신의 근본 원인은 진영 논리
대결·증오 부추기는 정치 사라져야

“정치하려고 하는 거 아냐?”

본의 아니게 책을 내게 된 후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리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전통적인 수단이 출간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일하던 곳에서 존경받다가 퇴직할 때도 유사한 반응이 쏟아집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다. 저런 분이 정치를 하면 잘할 텐데”, 이런 반응이지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공무원 조직에서는 그런 반응들이 일상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 뒤에는 반드시 이런 반응이 따라옵니다. “정치를 하면 사람이 변하던데, 그분은 그러지 않겠지?”


사람들이 이렇게 정치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정치가 자기 삶의 대부분을, 그것도 사소한 것까지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정치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해서 좀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속해 있던 직역에서도 많은 선후배들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정치인은 아쉽게도 매우 드물었습니다.

최근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다녀온 후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원래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상했다. 마치 자기가 짜 놓은 거미줄에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어쩌면 어거지로 먹이를 매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들어야 하는데, 대답을 하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역정을 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영 논리에 파묻혀 진실은 외면한다는 것이지요.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 적어지고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진영 논리에 매몰되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영 논리란 잘 아시는 것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은 무조건 옳고, 다른 집단의 주장이나 정책은 무조건 그르다는 태도를 말합니다. 논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논리는 전혀 없지요. 오로지 누구 편인지만이 중요하고도 유일한 기준입니다.

물론 거대 양당 구도에서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다음 선거를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요. 정치인에게 그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영혼을 팔아 혹은 영혼 없이 구호만 외칠 뿐 진영에서 헤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진영 논리의 배후에는 강성 지지층이 있습니다. 거대 정당의 정강과 정책을 끌고 가는 여론 주도층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비율은 전체 유권자의 10%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마치 복어처럼 몸집이 큰 것인 양 부풀려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려고 하지요.

정치권에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노력이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지요. 어쩌면 그것이 진영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유권자들의 아쉬운 투표권 행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정치를 거의 모르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변의 다른 분들처럼 그나마 있던 관심마저 꺼져 가는 느낌이기도 하지요. 그런 와중에 불현듯 와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불신과 대결,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는 국민에 대한, 역사에 대한 범죄입니다.”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선거 토론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하는 말이 아닐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2026-05-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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