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발생 전부터 몸은 암세포 성장 최적 환경으로 변한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4-29 09:27
입력 2026-04-29 09:20
초기 폐암에서 돌연변이 줄기세포가 주변 환경을 바꾸는 과정도. GIST 제공


국내 연구진이 암세포가 눈에 보이는 악성 종양으로 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몸 속을 암이 자라기 좋은 환경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 공동 연구팀은 폐암 발생 초기 단계 세포 간 연쇄 반응 구조를 규명하고 암 발생 전부터 체내 환경이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렸다.


폐선암은 사망률이 매우 높은 암이지만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서 환자 대부분 암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 발견돼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과학계는 폐 줄기세포 ‘AT2’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암으로 변하는 과정을 추적했지만 돌연변이 세포가 주변 정상 조직을 암 친화적인 섬유화 미세환경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과정은 여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연구팀은 생쥐와 인공 장기인 ‘3차원 폐 오가노이드’ 실험으로 암 발생 초기 단계에서 일어나는 세포들의 신호 전달 과정을 분석했다. 폐 조직을 단일세포 수준으로 분해해 섬유아세포, 폐암세포, 대식세포의 유전자 변화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 결과, 돌연변이 세포가 주변 세포를 포섭해 종양 형성을 돕는 ‘자기 지속적 회로’를 찾아냈다. 연구팀은 폐암 발생이 크게 3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선 1단계에서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 폐 줄기세포가 ‘암피레귤린’(AREG)이란 신호 물질을 대량 분비해 주변 세포에 공격 신호를 보낸다. 2단계에서는 신호를 받은 주변 섬유아세포들이 본래의 조직 복구 기능을 상실하고 조직을 딱딱하게 변형시키는 ‘섬유화 상태’로 변하며 암세포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뀐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섬유화된 환경이 면역세포를 불러들여 염증 반응을 극대화하고 이 염증 신호가 다시 돌연변이 세포의 악성 변화를 촉진하는 자기 증폭 회로를 완성한다. 연구팀은 암세포와 주변 환경이 서로를 돕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본격적인 종양으로 발전시킨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연쇄 반응의 핵심 고리인 ‘암피레귤린 신호 축’을 유전적·약물적 방법으로 차단하면 섬유화 미세환경 형성이 억제돼 폐암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저지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어 이번 발견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환자의 병태생리 환경에서도 재현되는지 검증하기 위해 환자 상태를 모사한 3차원 오가노이드 폐암 모델을 구축해 실험했다.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인 KRAS 돌연변이 모델에서도 섬유화 미세환경이 실제 폐 조직 내에서 유도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최진욱 GIST 생명과학과 교수, 이혜영 연구원(큰 사진 왼쪽부터), 에릭 카르도소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 ) 연구원, 이주현 MSK 교수(오른쪽 위 사진 왼쪽부터)

GIST 제공


연구를 이끈 최진욱 G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암세포 자체만 공격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암세포와 주변 환경의 ‘대화’를 차단해 암 발생을 근본적으로 막는 전략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폐암 발생을 극초기부터 억제하는 차세대 예방 및 정밀 맞춤형 치료 패러다임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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