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면 1억원’ 회장님…임대주택 외길에서 빚어낸 신념[창업주의 비밀노트]

허백윤 기자
수정 2026-04-27 16:27
입력 2026-04-27 09:37
85세 ‘현역’ 창업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자녀를 낳으면 아이 명의 통장에 현금 1억원을 지원하는 회사.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은 여전히 파격적인 저출산 대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2021년생부터 시작해 부영그룹이 지난 2월까지 직원 자녀 1명당 1억원씩 지급한 출산장려금은 누적 134억원입니다. 조건은 대한민국 태생. 입사 한 지 하루 된 직원도 받을 수 있고, 1억원을 받은 뒤 나중에 퇴직을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이중근(85) 부영그룹 회장의 얘기입니다. 실제 사내 출산율이 28% 가까이 늘었다는데, 출산장려금 1억원에는 단순한 출산율 수치를 넘어 이 회장이 걸어온 ‘임대주택 외길’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건강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책임감입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주거생활을 하고 그 안에서 가정을 꾸리며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성장하며 각자의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임대주택을 공급해 온 부영그룹의 창업주입니다. 여전히 활발하게 경영 활동을 하고 있죠. 전체 임대주택 공급 물량 30만 가구 중 80%에 가까운 23만여 가구를 임대아파트로 공급했고, 이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주거 사다리’가 됐습니다. 이 회장이 분양 수익 대신에 임대주택을 고집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이 회장은 1972년 우진건설산업을 시작으로 1983년 삼신엔지니어링(현 부영)을 설립해 구조가 튼튼하고 생활 공간이 편리한 주택 개발에 힘써왔습니다. 특히 다른 건설사들이 분양 수익에 몰두했던 1980년대 초반 이 회장은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무주택 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한다는 사명감으로 임대주택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자본이 부족했던 초기에는 정부에서 주택기금을 받을 수 있는 임대주택 사업이 좋은 선택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안정적인 경영을 목표로 ‘주택은 소유가 아니고 거주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과 공공 주거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사업 규모를 더욱 넓혔습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무리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나섰던 건설사는 법정 관리에 들어가거나 폐업하며 흔들렸지만, 부영은 임대료로 유동성을 탄탄하게 확보하며 오히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위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정부·기업·국민 함께 움직이는 ‘세발자전거’
“느려도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간다” 경영관이 회장은 이른바 ‘세발자전거론’이라는 경영철학을 강조합니다. “세발자전거는 두발자전거보다 느리고 투박하지만 잘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 “두발자전거는 빠르긴 해도 넘어지면 설 수가 없다. 세발자전거는 속도는 느려도 가다가 쉴 수도 있고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겁니다. 이는 임대주택사업을 빗댄 말입니다. 정부의 공적 자금을 활용해 미분양 위험이 낮은 임대사업을 하면서 서민들에게 질 좋은 공공 주거를 제공하는 ‘세발자전거’라는 뜻이죠. 부영의 사업 영역인 부동산, 금융, 건설의 세 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부영그룹의 임대주택은 기업이 임차인과 직접 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걱정이 없고 대부분 단지에서 8~10년의 장기 임차 기간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2년마다 재계약과 이사 걱정에 시달리는 일반 임대차 시장과 달리 입주민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주거 계획을 세우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통상 주변 단지보다 합리적인 가격이 책정되지만 2018년에는 전국 51개 단지의 임대료를 3~4년간 동결한 바 있습니다.
부영그룹은 매년 말이면 다음 해의 달력을 임대아파트 입주민 8만여가구와 학교 등에 전달하는데, ‘하루하루 일상을 계획하며 한 해를 다같이 잘살아 보자’는 뜻을 담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 회장은 임대주택 제도에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현행 민간 임대주택 제도는 임대와 분양이 혼재된 분양 대기 임대주택제도입니다. 이에 분양 전환을 앞두고 각종 분쟁이나 갈등이 생기거나 무주택 서민 주거 안정에 한계가 있고, 수익성도 더 낮으며, 건설사들도 회사 이미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임대주택 사업 참여를 꺼린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무주택자의 주거 불안과 하자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구임대주택 사업에 대한 민간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주택시장이 ‘거주만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30%, ‘소유주택’ 70%의 비중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주거는 인권의 기초…건강한 사회 기초”
‘사는(living) 집’ 안정성 강조…사회 공헌으로 이어져지난해 펴낸 ‘임대주택 구조 개선론-국민주거안정을 위한 구상’에서 이 회장은 “주거는 인권의 기초”라며 “주거가 빈약하면 건강하게 살 수 없고, 인간답게 살 수 없다. 건강한 주거는 건전한 인간과 건강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집은 사는(living) 곳’이라며 “소유가 아닌 거주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은 누구나 안정적인 삶의 터전을 누릴 수 있어야 건강하고 탄탄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은 주거 사다리뿐 아니라 저출생, 고령화, 호국보훈 등 다양한 사회공헌 행보로도 이어집니다.
매년 입춘에 열리는 부영그룹 시무식에는 출산장려금 지급 외에도 독특한 행사가 진행됩니다. ‘19단 경연대회’인데요. 본사와 계열사 임직원들이 1부터 19까지의 숫자를 곱하는 19단(19X19)을 외워 토너먼트 방식으로 계산 문제를 빠르게 맞히는 승부를 펼칩니다.
이 회장은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고 일상 자극에는 무감각해지는 이른바 ‘팝콘 브레인화’가 되기 쉬운 디지털 근무 환경이 오자, 두뇌 사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런 경연대회를 제안했습니다.
이 회장도 80세가 넘은 나이까지 공부를 놓지 않으며 행정학·법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교육 분야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며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00억원을 투입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노후 기숙사 3곳에 대해 리모델링을 지원했는데 현재까지 전국 초·중·고교와 대학교에 기증한 교육시설이 130여개가 넘습니다. 2008년 우정교육문화재단을 세운 뒤 지금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44개국 출신 외국인 유학생 2847명에게 누적 112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시무식 때 19단 경연대회…배움·공부 중요성도 강조
역사 알리기·유엔데이 제안… ‘어른다운 노인’ 역할 앞장이 회장은 자신의 아호 ‘우정(宇庭·우주의 정원)’을 딴 우정문고를 2013년 설립한 뒤 ‘6·25전쟁 1129일’, ‘광복 1775일’, ‘미명 36년 12768일’, ‘여명 135년 48701일’, ‘우정체로 쓴 조선 개국 385년’ 등의 역사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짜와 사실을 수치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우정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역사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야 하고 그 핵심은 정확한 날짜와 기록”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를 날짜와 숫자, 객관적 데이터로만 정확히 기록하고 바르게 알리겠다는 의지입니다.
이 회장은 지난 2월에는 유엔한국협회 회장으로 취임해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에 대한 감사와 후대에 이어질 시대정신을 강조하며 ‘유엔데이(10월 24일)’의 공휴일 재지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소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 회장의 통 큰 기부도 적지 않게 알려져 있습니다.
고향인 전남 순천시 운평리 주민을 비롯해 초·중·고교 동창, 군 동기와 전우들에게 최대 1억원씩을 ‘깜짝’ 송금했죠. 이 회장이 기부한 총 금액은 1조 2200억원이 넘고 약 2680억원의 개인재산도 기부에 썼다고 합니다.
대한노인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 회장은 ‘어른다운 노인’이라는 문구를 명함에 새기며 노인이 사회의 부담이 아닌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는 “90세는 되어야 진짜 노인”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어른’들이 사회에서 할 역할이 많다는 겁니다. 이 회장이 여전히 작업복을 입고 오늘도 회사에 출근하는 이유입니다.
허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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