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문 앞은 왜 안 와요?”…복도식 아파트 ‘1층 택배 산더미’ 논란[취중생]

유승혁 기자
유승혁 기자
수정 2026-04-25 11:10
입력 2026-04-25 11:00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지난해 8월 17일 서울 한 물류센터에 배송될 택배 물품이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택배비를 내고도 문 앞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경비실 옆에 놓여 있어 결국 직접 내려가서 찾아와야 합니다. 1층에 택배가 많이 쌓이는 날엔 아파트 방송이 울리기도 합니다.”


서울 강남구 한 주공아파트에 사는 이준호(49)씨는 요즘 택배 알림이 와도 반가움보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고 합니다. 현관문 앞이 아니라 1층 어딘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상자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복도식 아파트의 1층 공동 출입구 한쪽에는 크고 작은 택배 상자들이 뒤엉켜 쌓여 있기 일쑤입니다. 다른 주민들의 상자를 하나하나 들춰보며 자신의 물건을 찾아야 하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고 합니다.

이씨는 25일 “누가 잘못 가져가진 않을까 늘 마음이 쓰인다”며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도 택배를 찾아야 해서 내 시간을 계속 빼앗기는 느낌”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현관문 앞 배송’이 사실상 잘 지켜지지 않는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곧바로 집으로 이어지는 계단식 구조와 달리, 복도식은 긴 복도를 따라 여러 세대가 이어져 있어 집집마다 배송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이 때문에 일부 배송 기사들이 물량과 시간을 고려해 1층 공동 출입구나 경비실 앞에 택배를 한꺼번에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복도식 단지에서는 평일 오후가 되면 1층 현관 앞에 택배 상자들이 층층이 쌓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출입구가 사실상 ‘임시 택배 집하장’처럼 변한 셈입니다.

서울 강남구 한 주공아파트 1층에 배달된 택배 상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 서울신문DB


주공아파트 현장에서 만난 택배기사 정모(59)씨는 “복도식 아파트에서는 1층에 모아두는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한 층에 수십 세대가 길게 이어져 있어 이동 시간만 해도 만만치 않다”며 “물량이 많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배송을 조금이라도 빨리 마치기 위해 경비실 앞에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경비원들의 고민도 적지 않습니다. 주공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기사들이 경비실 앞에 택배를 많이 두고 가시는데, 분실이라도 생기면 책임 문제가 걱정된다”면서 “여러 차례 자제를 요청했지만 쉽게 개선되지는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택배업계 역시 난감한 상황입니다. 민원은 꾸준히 접수되고 있지만, 일선 기사들이 개인사업자 형태로 집배점과 계약해 운영되는 구조라 본사 차원에서 직접적인 통제나 제재가 쉽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관문 앞 배송이 원칙이지만 현장 여건과 기사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며 “집배점과 협의해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신문DB


유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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