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값 왜 비싼가” 했더니 주범은 담합…제지업계에 최대 과징금

박은서 기자
박은서 기자
수정 2026-04-23 18:04
입력 2026-04-23 18:03

한솔·무림 등 6개사에 과징금 3383억
공중전화·가명 쓰며 감시 피한 ‘치밀함’
공정위, 20년 만에 ‘가격 재결정’ 명령

한솔제지 신탄진공장 정문. 연합뉴스


4년 가까이 짬짜미로 가격을 70% 넘게 올린 제지 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300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제지 가격을 강제로 내리라는 취지의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를 20년 만에 꺼내 들었다.

공정위는 23일 무림에스피·무림페이퍼·무림피앤피·한국제지·한솔제지·홍원제지 등 6개 인쇄용지 제조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383억 25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제지업계 담합 사건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제지·홍원제지 2곳은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 업체는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3년 10개월간 최소 60회 이상 만나 총 7차례에 걸쳐 인쇄용지 기준 가격을 인상하거나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판매가격을 올리기로 합의했다. 임직원들은 담합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나 음식점 전화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 치밀함을 보였다. 가격 인상 사실을 알릴 때 특정 업체에 반발이 쏠리지 않도록 업체별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인상 가격을 통보했다.

6개 업체의 국내 인쇄용지 판매 시장 점유율은 95%에 이른다. 담합 기간 인쇄용지 판매 가격은 평균 71% 상승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제지 산업의 난관을 기술 혁신과 신사업 개척 등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담합으로 대처하고자 했던 불공정 행위”라고 지적했다.

6개 인쇄용지 제지사업자 가격 담합 제재 발표하는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 (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6개 인쇄용지 제지사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개 인쇄용지 제조·판매사업자들이 인쇄용지 제품의 가격 인상 폭과 시기 등을 합의하고 실행한 행위에 대해 향후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3,383억 원을 부과하고 2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2026.4.23/뉴스1


공정위는 가격 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각 제지사가 담합 전 경쟁을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각 업체는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가격 재결정 명령은 2006년 4월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두 번째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담합 적발 후 학습 효과로 인해 사업자들의 가격이 빠르게 경쟁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이번 사례는 경쟁당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날 담합을 반복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반복담합 근절방안’을 발표했다. 10년 내 담합을 한 번만 반복해도 과징금을 2배(100%) 가중하고 등록·허가 취소 또는 영업 정지를 내릴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한다.

담합이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반복되는 점을 고려해 담합을 주도한 임원의 해임 또는 직무 정지를 사업자에게 명령하는 임원 해임명령제도 도입도 검토한다.

세종 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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