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조 ‘치매머니’, 국가가 맡아 관리…‘공공신탁’ 22일 첫 도입

이현정 기자
수정 2026-04-21 14:07
입력 2026-04-21 12:21
기초연금 수급자 중심…비수급 노인도 이용 가능
현금성 자산 10억 원까지 국가가 수탁
경제적 학대 막는 ‘공공 방어막’ 기대
치매 환자의 재산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치매공공신탁제도’가 22일부터 시행된다. 판단 능력이 저하된 고령층의 자산을 공공이 맡아 관리해 경제적 학대를 막고 재산 관리 공백을 국가 책임으로 메우겠다는 취지다. 복지·의료 돌봄에 머물렀던 국가 역할이 재산 관리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첫 신호탄이다.
보건복지부는 22일부터 국민연금공단이 수탁자가 돼 치매 환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21일 밝혔다. 치매 환자 100만 명 시대,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이른바 ‘치매머니’가 약 154조 원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재산 관리 문제를 개인의 돌봄을 넘어 사회적 관리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원 대상은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로 재산 관리에 어려움이 있거나 향후 어려움이 예상되는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소득 하위 70%)로, 별도 이용료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65세 미만 조기발병 치매 환자라도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에 해당하면 재산관리 위험도를 고려해 예외적으로 무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 고령자가 이용할 경우에는 위탁 재산의 연 0.5% 수준의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위탁 대상 재산은 예금,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주택연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제한된다. 부동산과 주식 등 실물자산은 포함되지 않으며 위탁 가능한 재산 규모는 최대 10억원이다.
이용 절차는 신청부터 사후 관리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본인이나 가족이 국민연금공단 지사를 방문하거나 치매안심센터·요양시설 등을 통해 의뢰하면 공단이 대상자의 자택 등을 방문해 의료 필요도와 생활 환경, 재산 현황을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이후 대상자별로 월별 생활비, 요양비, 용돈 등을 포함한 ‘재정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신탁이 개시되면 공단은 계획에 따라 자금을 배분·집행한다. 정기 지출은 계좌이체 방식으로 지급되며 계획에 없는 특별 지출이나 계약 해지 요청이 있을 경우 외부 전문가가 과반수 참여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사후 관리도 강화된다. 공단은 월별 지출 내역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반기마다 최소 1회 이상 대상자를 방문해 상태를 점검한다. 이상 징후가 확인되면 불시 점검도 실시한다. 재산 관리 결과는 대상자와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통보된다.
친족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친족은 ‘지원인’으로 참여해 지출 내역 확인을 돕거나 ‘대리인’으로 의료·요양 관련 의사결정을 대신할 수 있다. 다만 재산 관리의 책임과 권한은 공공기관이 맡는다.
대상자가 사망할 경우 잔여 재산은 배우자 등 법정 상속인에게 지급된다. 상속인이 없을 경우 민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정리된다.
정부는 이번 제도를 통해 치매 환자의 재산이 본인 의사와 필요에 맞게 사용되도록 하고, 가족에게 집중됐던 재산 관리 부담을 공공이 분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요양시설 입소자 재산을 제3자가 임의로 사용하는 사례나 재가 치매 노인의 임대료 체납 등 기존 사각지대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현재 제도가 현금성 자산 관리에 한정돼 있어 부동산이나 주식 등 실물자산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 시범사업 이후 대상 확대가 이뤄질 경우 다양한 가구 상황을 반영한 대상자 선정 기준과 계약·감독 체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제도 안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복지부는 2년간 운영 결과를 점검한 뒤 2028년 본사업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치매 환자의 재산이 본인을 위해 안전하게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산 소실로 인한 빈곤층 전락을 막고 국가 재정 건전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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