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멈추진 않는 선…‘느린 손’의 화가 “그림 그릴 때 행복”
반영윤 기자
수정 2026-04-20 16:42
입력 2026-04-20 16:42
‘유전성 강직성 하반신마비’ 권은영양
선긋기에 한참 걸려도 멈춤 없는 화풍
“김현우 작가처럼 멋진 예술인 될래요”
희귀 질환인 ‘유전성 강직성 하반신마비’를 앓는 중증장애인 권은영(18)양이 A3 도화지에 색연필로 500원 동전 크기의 원을 그리는 데는 10초가 걸렸다. 권양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캐릭터 올라프에 미소를 그려 넣으며 “그림 그릴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의날인 20일 서울 마포구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만난 권양은 ‘그림’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근육이 뒤틀린 손으로 붓과 펜을 쥐는 것조차 쉽지 않아 선 하나를 긋는 일도 남들보다 수십 배 느리지만, 권양은 한 자리에 세 시간씩 앉아 작품을 완성하곤 한다.
권양의 집중력은 그림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어머니 노효선(49)씨는 “은영이는 느리지만 한번 시작하면 뒤로 물리는 일 없이 원하는 선을 끝까지 잇고야 만다”며 “흔들리지만 멈춤 없는 선이 은영이의 화풍”이라고 설명했다.
권양이 처음 화가의 꿈을 품게 된 곳은 병원이다. 권양은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과 푸르메재활의원에서 2013년 7월부터 최근까지 물리치료·작업치료·언어치료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치료를 접한 권양은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권양은 2021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어린이 그림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발달장애 김현우 작가와 같은 예술가가 되길 꿈꾼다.
성장하면서 근육이 뼈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관절은 점점 굳어 갔지만, 권양은 붓과 펜을 놓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해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다. 노씨는 “친구들이 1~2시간이면 끝낼 학교 숙제를 은영이는 하루를 꼬박 써야 겨우 완성하지만, 숙제를 마칠 때까지 먼저 잠드는 법이 없었다”며 “몸이 자라며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화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재활과 공부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올해 만 18세가 되는 권양은 어린이재활병원에서 마지막 치료를 받는다. 권양의 가족들은 2013년부터 오빠, 부모, 친가·외가 조부모까지 3대에 걸쳐 권양에게 꿈을 심어준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꾸준히 기부해 왔다. 노씨는 “다른 장애 아이들도 은영이처럼 재활치료를 받을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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