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3명의 여성이…연쇄살인마 ‘뻥식이’의 일그러진 허세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정연호 기자
정연호 기자
수정 2026-04-17 14:23
입력 2026-04-17 10:21
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연쇄살인범 최씨와 연결된 3명의 여인들. 왼쪽부터 뇌출혈로 사망한 전 여자친구 조 모씨, 살해당한 신 모씨와 김 모씨 사진-SBS 캡처


“딸이 연락이 안 돼요, 제발 좀 찾아주세요”


2017년 11월 19일, 경기도 의정부경찰서 민원실을 찾은 한 중년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서울에서 독립해 살던 21세 딸 신모씨가 벌써 넉 달째 연락이 두절됐다는 것. 평소 연락이 뜸한 적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긴 시간 휴대폰과 신용카드조차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이었다. 단순 실종인 줄 알았던 이 사건은 훗날 대한민국 수사 역사에 기록될 ‘역대급’ 연쇄살인 사건의 서막이었다.

경찰이 신씨의 거주지 CCTV를 확인한 결과, 마지막 모습은 그해 7월 13일 밤이었다. 신씨는 집에 들어온 지 5분 만에 작은 가방 하나만 챙겨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지갑과 신용카드는 방안에 고스란히 남겨진 채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집 근처에서 기다리던 렌터카였다. 운전석에는 전 남자친구 최모씨(당시 30세)가 앉아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나서는 신 씨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CCTV






사흘 뒤인 7월 16일 최씨는 신씨 없이 홀로 차를 반납했다. 렌터카 업체 사장은 당시의 최씨를 기이한 손님으로 기억했다. “렌터카를 빌려 가서 스팀 세차까지 싹 해서 가져오는 손님은 처음 봤다.” 차량 내부를 구석구석 살균 청소한 것은 호의가 아닌 처절한 ‘흔적 지우기’였다.

집을 나선 지 5분…증발해 버린 피해자이 사건의 잔혹함은 최씨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죽음의 행적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비극의 시작은 2017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씨와 동거하던 조모씨가 뇌출혈로 급사한 것을 시작으로 불과 한 달 뒤인 7월에는 전 여자친구였던 신씨가 포천 야산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어 그해 12월 최씨는 또 다른 연인 김모씨를 살해하며 잔혹한 행보의 정점을 찍었다. 단 6개월 사이에 최씨와 깊은 관계를 맺은 여성 세 명이 죽거나 사라진 것이다. 비록 첫 번째 동거녀의 죽음은 병사로 판명됐지만 수사팀은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용의자 최씨는 주변에서 ‘뻥식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SNS에 고가의 외제차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허세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의 기이한 행각은 연인의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6월에 사망한 조씨의 장례식장에서 최씨는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이른바 ‘연출 사진’을 찍는 기행을 벌였다.

6개월간의 타임테이블 AI생성 그래픽


6개월간 사라진 세 명의 연인더욱 소름 끼치는 사실은 그가 연인의 장례식장을 새로운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장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최씨는 죽은 조씨의 장례식에 조문 온 친구 김씨에게 접근해 호감을 표시하며 인연을 맺었다. 장례식장에서 싹튼 이 비극적인 만남은 결국 6개월 뒤 김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최씨에게 목 졸려 살해당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최 씨가 자신의 여자친구인 조 모씨의 장례식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SNS 캡처


‘뻥식이’의 일그러진 욕망… 장례식장의 연출 사진이미 김씨 살해 혐의로 수감 중이던 최씨는 노련했다. 그는 접견을 거부하며 경찰 수사를 비웃었다. 이에 투입된 이일호 프로파일러는 최씨의 ‘병적인 거짓말’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심문 전략을 짰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일부러 열어두는 ‘자유서술형’ 질문을 던졌다. 그가 지어낸 거짓이 객관적인 증거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균열을 노린 것”

사건관련 AI 생성 그래픽


프로파일러의 심리전… “거짓말할 기회를 주어라”최씨의 사이코패스 지수(PCL-R)는 26점으로, 일반적인 범죄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고위험군’에 속했다. 그는 남을 조종하고 거짓말을 하며 희열을 느끼는 전형적인 특징을 보였다.

시신 없는 수사는 한계에 부딪혔으나 수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온 GPS 기기였다. 렌터카 업체 사장이 차량은 이미 팔았지만 GPS 기기는 그대로 판매된 차량에 남아 있었다.

그 GPS 기록은 최씨의 행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최씨는 포천시 영북면 소회산리 일대를 반복해서 들락거렸고 특정 장소에서 시동을 끈 채 머문 기록이 확인됐다. 그곳은 토박이들도 잘 가지 않는 외진 야산이었다.

최 씨가 대여한 렌트카의 GPS 경로 AI로 생성한 그래픽


8개월의 침묵을 깨운 결정적 흔적 ‘GPS’2018년 3월 13일 대대적인 수색 끝에 약 60cm 깊이의 흙더미 아래서 신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사인은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데 따른 뇌 손상이었다.

자백 과정에서도 최씨는 뻔뻔했다. 그는 “죽은 조씨에 대해 험담을 해서 화가 나 살해했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형량을 낮추기 위한 거짓으로 판단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지냈으며 최씨는 이들의 명의로 수천만원을 대출받아 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11일, 대법원은 최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구치소 수감자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해 경찰서로 다시 데려와 조사한 ‘대한민국 수사 역사상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최씨는 스팀 세차로 혈흔을 지우고 연출된 사진으로 슬픔을 가장하려 했으나 기계에 남은 GPS 기록과 프로파일러의 집요한 분석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연쇄살인범 최 씨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전 여친을 욕해서...” 뻔뻔한 살해 동기자백 과정에서도 최 씨는 뻔뻔했다. 그는 “죽은 조 씨에 대해 험담을 해서 화가 나 살해했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형량을 낮추기 위한 거짓으로 판단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지냈으며 최 씨는 이들의 명의로 수천만 원을 대출받아 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11일, 대법원은 최 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구치소 수감자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해 경찰서로 다시 데려와 조사한 ‘대한민국 수사 역사상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최 씨는 스팀 세차로 혈흔을 지우고 연출된 사진으로 슬픔을 가장하려 했으나 기계에 남은 GPS 기록과 프로파일러의 집요한 분석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정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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