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의 질을 높이는 ‘뺄셈’의 미학

수정 2026-04-15 00:40
입력 2026-04-14 23:48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눈부신 치료가 가능해졌지만, 우리는 과연 그만큼 더 건강해졌을까요? 실제 진료 현장에선 ‘더 많은 검사와 약’이 반드시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역설이 자주 발생합니다. 불안감에 기댄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이나 관행적인 영상 검사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부작용과 방사선 노출이라는 실질적 위험을 초래합니다.

이런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2012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돼 2016년 국내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현재 35개 전문학회가 새로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율 참여 중입니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먼저 “이 검사는 불필요하다”고 말하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학회들이 앞장서 ‘실익 없는 검사와 치료‘ 리스트를 선별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진료 문화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이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캠페인이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진료 축소가 아닌 의료 본연의 가치와 신뢰를 회복하는 필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보호 조치입니다. 무분별한 방사선 피폭과 내성균 위협으로부터 환자를 선제적으로 지키는 기본 수칙입니다. 둘째, 의료 시스템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입니다. 명확한 근거 없는 진료에 귀중한 자원이 낭비되면 정작 촌각을 다투는 중증 환자가 소외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이 가장 절실한 곳에 쓰이게 하려는 취지입니다.


실제 35개 학회가 논의 끝에 제안하는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관행적인 의료 소비에 익숙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대한영상의학회는 조영제 CT·MRI 검사 전 맹목적이고 일괄적인 금식을 지양할 것을 제안합니다. 대한신경외과학회는 일상적인 단순 두통에 습관적 뇌파검사를 경계하며, 대한고혈압학회는 일시적인 진료실 수치보다 ‘가정 혈압’ 측정을 우선시합니다. 대한노인병학회는 신체 기능이 저하된 노인에게 5가지 이상 약물 처방을 삼가도록 권고합니다.

이런 변화는 결코 의사만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검사 수치에만 의존하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충분한 대화를 통한 ‘공동 의사결정’을 내릴 때 진료실의 신뢰는 두터워집니다. 환자 스스로 “부작용이나 위험은 무엇인지”, “대체 방법은 없는지” 주저 없이 질문하는 것이 가장 권장되는 소통법입니다.

‘현명한 선택’은 무언가를 뺏는 기계적 뺄셈이 아닌 불필요함을 정교하게 덜어내 의료 서비스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의료계의 치열한 고민과 공단의 정책적 지원이 국민들의 올바른 인식 변화와 맞닿을 때 진료 현장은 한층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적정 의료‘를 묻고 찾는 것이야말로 나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비결입니다.



정승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총무이사

정승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총무이사
2026-04-1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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