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줄기세포 이식받자 HIV가 사라졌다…‘오슬로 사례’에 비상한 관심

신진호 기자
수정 2026-04-14 20:02
입력 2026-04-14 14:47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 남성이 친형제로부터 줄기세포 이식을 받은 지 몇 년 뒤 HIV가 거의 사라진 사례가 노르웨이에서 보고됐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의 원인인 HIV는 오늘날 여러 치료제의 개발로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됐다. 바이러스 복제를 막는 약물을 정기적으로 복용해 체내 바이러스를 감지할 수 없는 수준까지 억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체내에 남아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활성화된다. 약물을 통한 HIV 완치 사례는 아직 없다.
오슬로에 사는 63세 남성, 일명 ‘오슬로 환자’는 희소 혈액암 치료를 위해 골수 줄기세포 이식을 받았다.
그런데 그에게 줄기세포를 공여한 형제가 HIV에 저항성을 보이는 희귀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식 수술 직전에 발견한 오슬로 대학 병원 연구진은 환자의 HIV 상태를 면밀히 추적했다.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HSCT)이라고 불리는 수술을 받은 환자는 4년 뒤 기능성 HIV DNA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이 환자의 혈액과 장 조직 등에서 HIV DNA를 정밀 분석한 결과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온전한 형태의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장은 HIV가 숨어 있는 주요 저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부위까지도 환자의 세포가 거의 전부 공여자인 형제의 세포로 대체된 상태가 확인됐다.
그는 조혈모세포 이식 후 2년 만에 HIV 약물 복용을 중단했고, 이식 후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바이러스 재발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형제의 줄기세포를 이식받으며 CCR5 유전자 변이가 함께 전달됐고, 이것이 HIV 소멸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CCR5Δ32/Δ32’라고 하는 이 변이는 HIV가 세포 내부로 들어갈 때 사용하는 통로인 ‘CCR5 수용체’의 발현을 막아 HIV의 세포 침투를 억제한다.
드물긴 하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제까지 줄기세포 이식으로 HIV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 변이가 전달돼 HIV가 완치된 사례는 오슬로 환자까지 8명에 불과하다.
골수 줄기세포 이식으로 HIV가 완치되는 사례는 고무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일단 이러한 이식 수술은 면역 체계를 위험하게 ‘재부팅’하는 것으로, 환자를 감염에 매우 취약하게 한다. 이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만 시행된다.
연구진도 “장기 이식을 받은 환자 중 10~20%가 1년 안에 사망한다”면서 오슬로 환자 역시 ‘이식편대숙주질환’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가 호전됐다고 밝혔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 후 공여자의 면역 세포가 수혜자의 몸을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중증 합병증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면역 체계의 반응과 이를 치료하는 데 쓰인 약물이 HIV의 완전한 사멸과 새로운 줄기세포가 생성된 데 부분적으로 기여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례 연구는 바이러스 저장소 제거를 통한 HIV 완치 전략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사례는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보고됐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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