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AI 전력 폭증에… 산업연 “재생에너지 즉각 전환 어려워”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수정 2026-04-12 14:57
입력 2026-04-12 14:55

산업연구원 “석유·가스 가격 급등, 재생에너지 투자 비용·공급망 부담 동시 증가 역설”

“화석연료 단기 대체 등 구조적 제약 뚜렷”
호르무즈 봉쇄 이후 화석연료로 회귀 역설
AI 투자 전력 수요 폭증…핵심광물 공급 병목
전력 발전량 비중 재생에너지 10% 못 미쳐
석탄·원전 31%, LNG 27% 순 전기 생산
“투자 장기 안정성 확보·전력망 인프라 시급”


해남군 솔라시도 재생에너지 산업단지. 서울신문DB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석유·가스 공급 불안과 가격 상승으로 재생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구조적 제약이 뚜렷해 즉각적인 전환은 어렵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기관은 장기 고정가격 계약 등 재생에너지 투자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력망 확충 등 에너지 시스템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업연구원은 12일 ‘중동 전쟁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할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구조적 제약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석유·액화천연가스(LNG)·석탄 화석에너지 가격 상승이 재생에너지 투자 비용과 공급망 부담을 동시에 높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쟁으로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이에 따른 금리 인상은 자본 조달 비용에 민감한 재생에너지 투자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킨다”며 “금리 2% 상승 시 가스 발전 비용은 11% 오르는 데 그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20%나 뛴다”고 덧붙였다. 디젤 가격 상승은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 및 광물 프로젝트 현장의 중장비 운영 비용을 전쟁 이전 대비 35%나 증가시켰다고 설명했다.

화석에너지의 위기가 오히려 다른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부추기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렸고, 아시아와 유럽의 발전용 석탄 선물 가격은 각각 13.2%, 14.2% 상승했다. 한국도 석탄 화력 발전량 상한을 해제한 상태다.



재생에너지 먼저, 화력발전 우대 중단! 전국 탈화석연료 네트워크(KBF)인 화석연료를 넘어서 회원들이 3월 3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 기후에너지환경부 앞에서 기자화견을 열고 화력발전을 우대하고 재생에너지는 밀어내는 계통 운영방식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대신 빠르고 안정적인 가스 발전이 주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도 제약 요인이다. 국제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WRI)는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은 2024년 180TWh 수준에서 6년 만인 2030년 400TWh로 2~3배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가스 발전이 주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전력 생산은 LNG·석탄·원자력 비중이 높은데 LNG 가격이 유가와 연동되면서 결국 발전 원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원별 발전 비중은 석탄 31.4%, 원자력발전 30.7%, LNG 26.8%, 신재생에너지 9.6% 순이다. 정부는 화석 연료 가격의 발전 단가가 상승한 만큼 전기 요금 부담이 올랐지만 서민 부담 증가를 이유로 2분기 전기 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동결했다.

박유미 연구원은 “AI 투자 경쟁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으로 에너지원의 종류를 따질 겨를 없이 공급 확보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라며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불거지는 핵심 광물 공급 병목, 기존 전력 시스템과의 통합에 드는 총체적 비용까지 더해져 구조적 제약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연료 집약적’ 시스템에서 ‘광물 집약적’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광물 공급 제약이라는 문제도 부상했다.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구리와 리튬, 희토류 등 막대한 양의 핵심 광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중국이 에너지 전략 광물 20개 중 19개의 제련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과거 희토류 수출 통제 사례와 같은 ‘핵심광물 무기화’ 리스크도 유의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1시 11분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풍력발전단지 내 한 노후 풍력발전기에서 불이 난 가운데 발전기 프로펠러 등이 불길에 휩싸인 채 떨어지고 있다. 이날 화재로 정비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덕 연합뉴스


보고서는 이런 제약을 넘어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하기 위해 세 가지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우선 차액결제 계약·장기 고정가격 계약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투자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력망을 포함한 에너지 시스템 인프라 구축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지금까지의 재생 에너지 확대는 기존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 수요에 얹힌 ‘에너지 추가’에 그쳤다고 진단한 뒤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수요 감축과 화석연료 사용 억제가 먼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년 세계는 풍력·태양에너지 사용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석유·석탄 소비 역시 동시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때문에 건물·산업 부문의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 대중교통 투자 확대, 전기차·히트펌프 등 전기화 제품 보급 확대 등 화석연료 사용 억제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광물 조달·비축을 위한 자원 외교와 국제 공조, 공급망 다각화를 통해 에너지 안보 리스크를 완화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화석연료의 공급 안정성은 지속해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정박해 있는 유조선. 연합뉴스


세종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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