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거절해? 그럼 이렇게…” 1년에 여성 1500명 살해당하는 나라

김소라 기자
수정 2026-04-10 19:07
입력 2026-04-10 19:07
‘여성 혐오 살해’ 만연 브라질
SNS서 ‘여성 폭력’ 영상 본 뒤 범행
유튜브서 ‘여혐’ 채널 2300만명 구독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바다 건너 마주하고 있는 상곤살루에 사는 여성 알라나 아니시오 로사(20)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집요하게 꽃과 초콜릿, 편지를 보내며 스토킹해온 남성에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한달 뒤 그는 자신의 집 앞에서 그 남성을 마주했다. 그 남성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몇 주 동안 여러 차례에 걸친 대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알라나가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브라질의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자신을 거절하는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했다.
‘여자가 ’노‘라고 말할 경우를 대비한 훈련’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남성들은 마네킹을 세워둔 채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흉기로 찔렀다. 알라나의 어머니는 “가해 남성도 SNS에서 이 영상을 팔로우했다”고 말했다.
“거절하는 여성 때려라” 영상 ‘팔로우’
스토킹 대상 여성에 ‘칼부림’이처럼 브라질에서는 여성을 겨냥한 폭행과 살인 등이 만연하고 있으며, SNS에서 확산하는 ‘여성 혐오’ 컨텐츠가 이러한 여성에 대한 범죄를 조장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라질은 2015년 ‘페미사이드(여성 살해)’를 살인 범죄의 한 유형으로 법제화했으며, 지난해에는 1년 동안 1568명의 여성이 살해당해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최근 “남성들이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브라질의 SNS에 퍼진 여성 혐오 콘텐츠가 영화 ‘매트릭스’(1999)에 등장하는 붉은색 알약에 빗대 ‘레드 필(빨간 약)’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여성을 겨냥한 범죄를 미화하는 ‘레드 필’ 콘텐츠들이 최근 여성 대상 범죄 사건에 영향을 미친 정황들이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남성 청소년 5명이 여성 청소년 1명을 집단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피의자 중 한 명이 이러한 ‘레드 필’ 콘텐츠를 다루는 인플루언서가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경찰에 자수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유튜브에는 여성 혐오와 여성 폭력, 여성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미화하는 브라질 채널 123개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구독자는 2300만명에 달했다. 브라질 인구는 지난해 기준 2억 1000만여명이다.
텔레그램에선 10들이 ‘여성 범죄’ 콘텐츠 공유경찰의 ‘사이버 증오 범죄’ 책임자인 플라비오 롤림은 AFP에 “이러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든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의 ‘급진화 과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폐쇄적인 SNS인 텔레그램에서는 여성에 대한 더 노골적인 폭력을 묘사한 콘텐츠들이 넘쳐났다. AFP가 특정 텔레그램 대화방을 살펴본 결과 성폭행과 관련한 ‘밈(meme)’을 다루거나 여성을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찰은 지난 2월 여성에 대한 범죄를 담은 영상을 제작해 공유하는 국제 조직에 가담한 브라질 남성들을 체포했다.
플라비오 롤림은 “이러한 콘텐츠들이 공유되는 대화방 가운데 15~16세 청소년들로 구성된 그룹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레드 필’ 콘텐츠들의 확산을 막기 위한 입법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브라질 연방 하원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고 저장하는 콘텐츠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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