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물이 금값, 유세차 없애 돈 아껴”…중동발 원자재 대란에 지선 앞둔 군소정당들 ‘궁여지책’ [취중생]

수정 2026-04-11 10:00
입력 2026-04-11 10:00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기본소득당 서울 은평구의원 후보로 나선 김진서(왼쪽 두 번째) 후보가 지난 4일 서울 은평구 불광천에서 걸으며 유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 후보는 중동발 원자재 수급난에 공보물 비용이 높아지자, 기름값이라도 아끼려 유세차량을 포기했다. 기본소득당 제공


6·3 지방선거 기본소득당 서울 은평구의원 후보로 나선 김진서(29) 후보는 최근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혔습니다. 매일 10㎞가량을 걸어 다니며 은평 주민들을 만나고 있는데, 곧 자전거 유세를 벌일 참입니다.


공보물 3만여부를 인쇄·배포하는 데 드는 비용이 600만원 안팎에서 1000만원 이상으로도 뛸 것 같아, 기름값이라도 줄이기 위해 내린 선택입니다. 김 후보는 “기름값은 물론 유세차 외부 래핑에 들어가는 인쇄비까지 올라 차를 운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중동발 원자재 수급난이 이어지면서 군소정당들이 유세차를 아예 없애거나 공보물 크기를 줄이는 식의 자구책을 짜내고 있습니다. 공보물과 현수막 제작, 유세차량 래핑 등에 쓰이는 각종 석유화학 원료 가격이 치솟으면서 선거 비용 부담이 가파르게 불어난 탓입니다.

지방선거는 군소정당이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무대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소수 정당의 목소리가 유권자에게 닿는 통로마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한 원료가격 상승으로 나프타 등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현수막의 원단 가격이 30% 가까이 인상된 지난 7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현수막 제작업체 모습. 연합뉴스


윤정현(53) 노동당 서울 강북구청장 후보도 인쇄비 급등에 공보물 분량 축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윤 후보는 “원래는 4페이지 공보물을 생각했지만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2페이지짜리 한 장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한 장으로 만들면 후보 정보가 들어가는 면을 빼고 나면 정책과 공약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사실상 한 면뿐이라 고민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수막도 줄일 계획입니다. 행정동 13개인 강북구에서는 동별로 2개씩 모두 26개까지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법정 상한을 다 채우지 않고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미디어 노출과 선거운동원 동원이 상대적으로 밀리는 군소정당 입장에서는 유권자와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이 공보물, 현수막, 거리 유세 등으로 한정돼 있습니다. 정의당 관계자는 “현수막과 공보물은 시민과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데 비용이 오르면 그만큼 목소리를 낼 기회도 줄어든다”고 토로했습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린 지난달 30일 찾은 경기 시흥시 시화국가산업단지 모습. 이지 수습기자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군소정당이 자신을 알릴 창구 역시 함께 좁아지는 셈입니다.

다른 군소정당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소득당 관계자는 “전국에 배포되는 공보물 비용이 억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며 “기존에 마련한 예산으로는 감당이 어려워 공보물 일부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지선 미래당 대표는 “거대 정당은 공보물이나 현수막에 돈을 써도 득표율 15%를 넘기면 비용을 보전받지만, 군소정당은 선거비용 상승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공보물을 디지털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신문 DB


반영윤 기자·정회하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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