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 뒤에 숨은 살인마… ‘수락산 토막살인’ 여장이 남긴 치명적 흔적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정연호 기자
정연호 기자
수정 2026-04-10 15:58
입력 2026-04-10 15:58
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CCTV에 찍힌 여장을 한 박 모씨 사진-서울중랑서 제공


수락산 토막살인 사건… 여장(女裝)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과 흔적2018년 초여름. 서울의 한 조용한 주택가에서 시작된 단순 실종 사건은 대한민국 수사 역사에 기록될 만큼 기괴하고 잔혹한 엽기 범죄로 드러났다. 범인은 완전범죄를 꿈꾸며 미니스커트와 가발을 이용한 파격적인 변장까지 시도했으나 그가 남긴 미세한 신체적 습관과 형사의 날카로운 직감은 결국 진실을 밝혀냈다. 범죄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수사학의 명제를 다시 한번 증명한 ‘수락산 토막살인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재구성한다.




현장검증을 위해 경찰서를 떠나고 있는 피의자 박 모씨 사진-연합뉴스TV


부산으로 떠난 남편의 실종과 800만 원의 행방사건의 서막은 2018년 6월 11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한 통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되었다. 신고자인 아내는 “남편이 지난 7일 부산에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호소했다. 실종된 50대 남성 김 씨는 외출 직전 아내에게 급히 부산에 간다는 연락을 남기고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초기에는 성인 남성의 단순 가출이나 실종으로 여겨졌으나 실종 이틀 후인 13일 김 씨의 아들이 전해온 소식으로 사건의 흐름이 강력 범죄로 급반전됐다.



아들은 아버지의 통장을 확인하던 중 부산에 간다던 다음 날부터 이틀에 걸쳐 서울의 한 은행에서 총 800만 원의 현금이 인출된 사실을 발견했다. 부산에 있어야 할 김 씨의 계좌에서 서울의 금융기관을 통해 거액이 빠져나간 점에 대해 경찰은 즉시 강력팀을 투입하여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현금이 인출된 은행 주변의 CCTV 영상을 확보하여 범인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사건관련 그래픽


CCTV 속 미니스커트 여인확보된 영상에는 기묘한 모습의 용의자가 포착되었다. 비가 내리는 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우산을 깊게 눌러쓴 채 미니스커트 차림을 한 여성이 김 씨의 카드로 돈을 찾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작은 핸드백을 어깨에 메고 매끈하게 뻗은 다리 라인을 가진 이 인물은 뒷모습만 보아서는 영락없는 여성이었으며 은행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또한 남자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형사들의 눈에는 이 여성의 모습에서 지울 수 없는 위화감이 포착되었다. 영상을 반복해서 분석하던 수사팀은 해당 인물의 체형과 골격이 여성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다부진 남성적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김 씨와 평소 무도회장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박 모 씨였다. 용의자가 특정되자 경찰은 귀가하던 박 씨를 긴급 체포했다.

현장검증 중인 피의자 박 모씨 사진-연합뉴스TV


호송차 안의 심리전과 충격적인 자백…“잘라서 묻었습니다”체포 직후 박 씨를 압송하는 과정에서 형사들과 박 씨 사이에는 팽팽한 심리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호송차에 동승했던 한 형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박 씨의 무릎을 두드리며 “너무 긴장하지 마라, 가서 다 이야기하자”며 심리적 빗장을 푸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러한 비언어적 대화와 스킨십은 범인의 마음을 흔들었고 박 씨는 마침내 고개를 숙인 채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잘라서 묻었습니다“

이 참혹한 답변은 단순 살인을 넘어선 시신 훼손 범죄의 전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박 씨의 자백을 토대로 경찰은 체포 다음날 서울 노원구의 한 야산에서 암매장된 김 씨의 사체를 찾아냈다.

CCTV에 찍힌 여장을 한 박 모씨 사진-서울중랑서 제공


4일간의 기괴한 동거와 뒤틀린 범행 동기박 씨가 털어놓은 범행의 과정은 더욱 엽기적이었다. 그는 6월 8일 상계동 자신의 집에서 김 씨와 술을 마시던 중 시비가 붙어 김 씨를 살해했다. 범행 직후 박 씨는 사체를 즉시 처리하지 않고 무려 4일 동안이나 시신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지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시신과 함께 있는 것이 무서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고 진술했으나 부패가 시작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지자 시신을 훼손하여 유기하기로 결심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 박 씨는 “5년 정도 만난 내 여자친구를 200만 원을 줄테니 자기에게 넘기라고 하며 김 씨가 모욕하여 격분했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범죄전문가들은 살인범들이 자신의 범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박 씨가 일정한 직업이 없고 1,000만 원 상당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결국 박 씨는 처음부터 김 씨의 금전을 노리고 접근하여 살해한 뒤 김 씨가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로 아내에게 거짓 메시지까지 보낸 계획적 범죄자라는 사실이 수사 결과 밝혀졌다.

징역 30년과 잔혹한 범죄의 종말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범행 과정이 극악하여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와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박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박 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뒤 시신을 손괴하고 유기했으며 여장한 채 예금을 인출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범행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유족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수락산 토막살인 사건은 범인이 여장이라는 파격적인 위장을 통해 수사망을 피하려 했으나 인간의 신체에 밴 고유한 습관과 과학적인 CCTV 분석 그리고 형사의 집요한 추적 앞에서는 그 어떤 위장도 무용지물임을 보여주며 종결되었다.

정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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