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비딕’ 속 고래 박치기 사실이었다 [달콤한 사이언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3-27 10:30
입력 2026-03-27 10:30
“뒤를 돌아보니 고래가 정면으로 100로드(약 500m) 거리에서 평균 속도의 두 배인 24노트 정도로 돌진해 왔다. 분노와 복수심이 그 기세에서 열 배는 더 느껴졌다. 꼬리를 쉼 없이 격렬하게 흔들며 사방으로 파도를 일으켰다. 머리를 수면 밖으로 반쯤 내밀고 그렇게 우리에게 돌진해 다시 한번 배를 들이받았다.”

소설 ‘모비딕’과 19세기 포경선 선원들은 고래가 의도적으로 물체에 박치기를 해 선박을 좌초시킨다고 이야기했다. 그 동안 실제로 관찰된 적이 없었는데 과학자들이 드론 기술을 이용해 고래들의 박치기 행동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 투르시옵스 해양연구협회 제공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모티브가 된 에식스호 침몰 당시를 일등항해사 오언 체이스가 기록한 내용이다. 에식스호는 27m 크기의 범선형 포경선으로 1820년 갈라파고스 인근 해역에서 대형 수컷 향유고래에게 두 차례 정면으로 들이받혀 침몰했다고 알려졌다. 향유고래가 머리로 물체를 밀치거나 충격을 가한다는 사실은 19세기 소형 보트로 포경을 했던 시대부터 목격담 형식으로 전해졌다. 대형 포경선이 향유고래 때문에 침몰한 사례는 에식스호 이외에 19세기 알렉산더호와 캐슬린호도 마찬가지다.

사실 고래가 의도적으로 머리를 사용해 다른 물체를 공격한다는 것은 선원들의 목격담만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나 관찰이 없어 문학적 과장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런데, 고래의 박치기 행동이 사실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영국 세인트앤드류스대, 스페인 투르시옵스 해양 연구협회, 포르투갈 아조레스대 해양 과학 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향유고래가 서로 머리를 들이받는 행동을 사상 처음으로 영상으로 포착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해양학 분야 국제 학술지 ‘해양 포유류 과학’ 3월 23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오랫동안 가설로만 남아있던 고래들의 박치기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드론을 활용했다. 연구팀은 2020~2022년 아조레스 제도와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현장 조사를 하며 드론으로 서로 박치기 하는 장면과 박치기 전후 행동, 사회적 맥락 등을 면밀히 관찰했다.

연구 결과, 기존에 가설로 제시됐던 것처럼 완전히 자란 대형 수컷 개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어린 청소년기의 ‘아성체’(亞成體) 고래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치기 행동이 집단 결속과 사회적 역학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추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수컷 간 세력 다툼이 아닌 사회적 학습이나 놀이 행동일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는 머리를 습관적으로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는 진화적으로 선택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고래의 머리에는 음파를 보내고 반향을 감지해 먹이를 파악하는 반향정위와 사회적 의사소통에 쓰는 음파를 만드는 구조가 있어 박치기를 수시로 한다면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구를 이끈 알렉 버슬럼 박사는 “이번 연구는 드론 기술을 이용해 야생동물 생물학 연구를 한 단계 더 혁신하는 계기가 됐다”며 “추가 연구를 통해 미발견 행동들을 밝혀내고, 박치기 행동의 기능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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