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 작전에 일본의 역할 확대를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고 미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도 구체적 지원 방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모두 발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만이 전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지지의 뜻을 밝혔다. 이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돼선 안 된다”며 “일본은 이란이 인접 지역을 공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와 나란히 취재진 앞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에서의 일본의 역할과 관련해 “일본이 더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일본에는 4만 5000명의 (주일미군) 병력이 있다”고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어 “우리는 많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일본이나 누구에게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나서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관련해 어제, 그제 우리에게 전달된 성명으로 볼 때 그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는 달리 정말로 책임을 지려고 하고 있다”고도 했다.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 작전에 불참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나토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면서 다른 국가에도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비공개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호르무즈 파병 요구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의 법률을 설명했다고 소개했다.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무력 사용을 포기한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 하에서 일본 정부가 전투가 진행 중인 지역에 군함이나 자위대를 보내는 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법적 허용선 안에서 이란전 종료 뒤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활동을 지원하거나 조사·연구 목적의 자위대 함정 파견 등을 제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공개 회담에서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지원 수준에 만족하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아왔다”며 “어제와 그제 우리에게 전달된 메시지를 보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다. 나토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나토와 달리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호응할 여지가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낸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일본의 2차 대미 투자 프로젝트가 확정될지도 주목된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은 40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의 미국 소형 원자로 프로젝트 투자 합의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담에서 미국은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이 배석했다. 일본에서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 등이 함께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카이치 총리에게 노골적으로 기여를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담이 진행됐다.
일본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애초 미일 정상 간의 양자 오찬도 예정돼 있으나 추가 논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이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정상은 이날 만찬을 함께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