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 장내 ‘이것’ 때문이라고?

문경근 기자
수정 2026-03-22 23:00
입력 2026-03-22 23:00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의 원인이 뇌가 아닌 ‘장’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미국 아크 연구소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은 그 단서를 장내에서 찾았다. 연구진은 나이 든 쥐의 위장관에서 만들어지는 특정 물질이 장과 뇌를 잇는 신경 신호를 약화하고,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인지 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젊은 쥐를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군에 노출했다. 그 결과 젊은 쥐의 장내 환경은 늙은 쥐와 비슷한 방향으로 바뀌었고, 기억력과 인지 기능 검사에서도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반대로 이 쥐들의 장내 미생물을 항생제로 크게 줄이자 기억 기능이 다시 회복됐다. 장내 미생물이 전혀 없는 무균 상태의 쥐에게서는 노화에 따른 기억력 저하가 훨씬 느리게 나타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노화한 장내 미생물군이 만들어내는 특정 성분이나 부산물이 기억력 감퇴의 원인일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파라박테로이데스 골드스타이니’(Parabacteroides goldsteinii)라는 세균은 나이 든 쥐의 장에서 더 많이 발견됐고, 기억력 저하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균이 늘어나면 중쇄 지방산이라는 물질이 증가하고, 이것이 장의 면역세포를 자극해 염증 신호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생성된 물질은 장기의 상태를 뇌에 전달하는 ‘미주신경’ 감각신경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결국 기억 형성에 중요한 뇌 부위인 해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인지 기능을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우선은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을 줄이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특정 박테리아를 겨냥한 박테리오파지(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활용했더니, 파라박테로이데스 골드스타이니의 활동이 억제되며 기억력도 함께 개선됐다.
이 밖에 미주신경 자체를 자극하는 방법도 있다. 연구진은 장 호르몬 콜레시스토키닌(CCK) 또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를 사용해 미주신경 활동을 높였고, 늙은 쥐의 기억력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식후에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과 비슷하게 작용해 혈당을 낮추고 체중 감소를 돕는 약물군으로, 삭센다, 위고비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중증 간질 환자나 뇌졸중에서 회복 중인 환자에게 미주신경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치료법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시술을 받은 환자들 사이에서 인지 기능 향상이 보고됐다”며 “궁극적으로 이번 연구 결과가 임상 현장에 적용돼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지난 1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문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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