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벨 알리 정박 선원, 서울신문 인터뷰서 긴박한 순간 증언
1일 낮 미사일 낙하에 공포 확산… “이제 끝인가 싶었다”
하역 작업 재개에도 불안 여전…출항 명령은 여전히 오리무중
전문가 “외교 경로 통한 안전 해역 이탈·선원 철수 검토해야”
“배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번쩍이는 불빛이 바다를 가르더니, 곧바로 폭발음이 울렸습니다. 그 순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제벨 알리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의 선원 A씨는 2일 서울신문과 스마트폰 등을 통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날 긴박했던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전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인근 항구에 머무는 한국 선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A씨가 탑승한 선박 역시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제벨 알리 항구로 대피한 상태였다.
제벨 알리 항구는 중동 최대의 컨테이너 항구로 두바이 경제의 핵심에 해당한다. 동시에 미 해군 함정이 기항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항공모함급 선박도 수용할 수 있는 중동 최대 규모 항만이다.
A씨가 처음 이상 징후를 감지한 건 지난 1일 새벽 3시(이하 현지시간)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이뤄진 이튿날이었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어 또 다른 불빛들이 연이어 궤적을 그렸다. 잠시 뒤 희미한 연기 자국이 남았다. 미사일과 드론으로 보이는 비행체였다.
그는 “그때는 몰랐는데, 이란이 미 해군 함정을 겨냥해 발사한 미사일이었다. 사우디에 폭격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두바이까지 영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단지 멀리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겼다”고 밝혔다. 실제 그는 당시 항구의 불빛은 여느 때처럼 밝았고 선원들도 통상적인 새벽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멀리 있던 전쟁’은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낮 12시 30분이 되자 선박 인근 해상과 항구 주변으로 미사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고 곧이어 땅을 울리는 듯한 굉음이 항만을 뒤흔들었다. 충격파가 선체를 타고 전해지며 배가 미세하게 떨렸다.
A씨는 “뉴스 속 장면이 아니라 나와 동료들의 생명과 직결된 현실이라는 게 실감 났다”며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혹시 다음 미사일이 우리 쪽으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졌다”고 덧붙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상 통로로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세계적 원유 수송로다. 전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27%가 이곳을 지나간다. 현재 우리나라 선박 37척이 이 해협과 페르시아만, 오만만 일대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IRGC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선박 통행을 차단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민간 선박에 대한 무차별 공격까지 감행하면서 중동 해역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A씨는 폭발 직후 승무원 20여명이 즉시 선내 안전 구역인 ‘시타델’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해적 침입이나 무장 충돌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마련된 밀폐 공간이다. 선원들은 숨을 죽인 채 무전기와 휴대전화 화면을 번갈아 확인했다. 이후 선원들의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쌓였다. 그는 “현재 상황을 가족들과 계속해서 공유하고 있다”면서도 “가족들의 불안함이 가장 큰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오전부터 제벨 알리 항구의 하역 작업은 일부 재개됐으나, 선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언제 다시 공습이 이어질지, 출항 명령은 언제 내려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출항 일정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주·부식 보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험 해역에 대한 명확한 안전 구역 설정과, 필요하다면 선원 송환 대책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쿠웨이트 앞바다에서 투묘(닻을 내리고 정박하는 것) 중인 선박의 선원 B씨도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날 자정쯤 하늘에서 미사일이 불꽃놀이처럼 번쩍였다”며 “내가 탄 배에 미사일이 떨어지거나 표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어 “선원들도 한때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지금은 다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며 “현재 쿠웨이트에서 배에 화물을 싣기 위해 대기 중이고, 이틀 정도 작업을 마친 뒤 빠져나갈 예정인데 그때까지가 가장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해협인 오만만을 통과한 선박 선원들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당 선박 관계자 C씨는 “20명 정도가 탑승한 배가 공습 상황이 발생한 직후 중동을 벗어났다”며 “위험 상황이 본격화되기 직전 해역을 떠난 셈이라 선원들과 회사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밝혔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와 현지 외신에 따르면 IRGC의 봉쇄 조치 이후 최소 4척의 선박이 피격되어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장 출신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해협에 고립될 경우 통상적인 방법이 어렵다면 외교적 경로를 통해 안전 해역으로 빠져나오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출국이 가능하다면 선원 교대나 철수도 적극 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해상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사전적·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승혁·반영윤·세종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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