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침대 밑에 머리가…” 3년을 아내 시신 위에서 잠든 남편이 저지른 또 다른 범행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정연호 기자
정연호 기자
수정 2026-02-27 17:18
입력 2026-02-27 17:18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 기자인 유영규 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범죄는 흔적은 남긴다’ 연재물의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사건 재현 장면 E채널 용감한 형사들 캡처


“김 사장, 우리 집사람이 전화를 통 안 받네. 미안하지만 2층 좀 올라가 봐 줘.”


2005년 6월 8일 오전 10시쯤 부산의 한 중국 음식점. 가게 문을 열자마자 걸려 온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위층 남자였다. 멀리 출장을 나와 있는데 집에서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해당 중국집은 얼마 전까지 위층 주인이 직접 운영했던 터라 아래층 식당과 2층 살림집 사이에는 음식을 나르던 일종의 ‘개구멍’ 통로가 있었다. 식당 주인 김씨는 이 좁은 통로로 머리를 내밀어 2층 내부를 살폈다. “아주머니, 저 아래층입니다.” 해가 중천을 향하고 있었지만 집 안은 이상하리만큼 어둡고 고요했다. 그때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린 김씨는 기절초풍했다. 1층으로 굴러떨어지듯 내려온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찾았다.

“여기 중국집 2층인데요. 사… 사람이 죽어 있어요!”



참혹한 현장과 의문의 족적 240㎜의 트릭감식반이 현장에서 확인한 시신은 2층 안주인 A(63)씨였다. 현장은 잔혹했다. 범인은 A씨의 머리와 옆구리 등을 흉기로 24차례나 찔렀고 목을 조른 흔적도 역력했다. 특이한 점은 시신 위에 옷가지가 수북이 덮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범인이 면식범이라 참혹한 모습에 죄책감을 느꼈거나 범행 후 심리적 동요를 일으켰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집 안이 어두웠던 이유는 분전함(두꺼비집)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문을 연 흔적도, 사라진 패물도 없었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에 무게를 뒀다. 집 안 곳곳에 뿌려진 혈흔은 사망자가 숨지기 전 범인과 꽤 오랫동안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음을 방증했다. 그러나 지문 등 범인을 특정할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감식반원의 목소리가 정막을 깼다.



“여기 발자국이 있는데요.”

감식반원이 가리킨 곳에는 별 모양의 선명한 신발 자국이 포착됐다. 크기는 235~240㎜ 정도였다. 운동화 아니면 등산화 계열의 족적이었다. 수사팀은 혼란에 빠졌다. 240㎜라면 발이 아주 작은 남성이거나 여성의 크기였다.

경찰은 LCV(Leuco Crystal Violet) 시약을 동원했다. 혈흔 속 단백질에 반응해 자주색으로 변하는 이 시약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범인의 동선을 낱낱이 밝혀냈다. 경찰은 주변 인물들을 차례로 용의선상에 올렸다. 처음엔 아내의 안부를 물었던 남편이 의심을 샀다. 새벽부터 집요하게 전화를 걸고 김씨를 현장으로 보낸 행동이 마치 ‘시신 발견자’를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출장지 역시 자동차로 100여 분 거리라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범행 후 복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용의자는 A씨에게 5000만원을 빚지고 도망갔던 B씨였다. 한때 친밀했으나 금전 문제로 원한을 샀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입증되며 수사는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이때 마지막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 남편의 친구 C(66)씨였다.

사건 재현 장면 E채널 용감한 형사들 캡처


”제가 죽였습니다“… 손톱 밑 DNA가 밝혀낸 배신C씨는 시신 발견 3시간 전인 오전 7시쯤 친구(남편)의 부탁을 받고 집을 방문했으나 안에서 대답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식 결과는 달랐다. 죽은 A씨의 손톱 밑에서 발견된 미세한 혈흔이 C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피해자가 마지막 순간 필사적으로 범인의 팔을 할퀴며 남긴 ‘침묵의 증언’이었다.

10여 시간에 걸친 피 말리는 심리전 끝에 60대 노인 C씨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제가 죽였습니다.”

C씨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남편이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는 사이 C씨와 A씨는 4년간 내연 관계를 유지해 왔다. 갈등은 돈에서 시작됐다. 사정이 급해진 C씨가 빌려준 돈 5000만원을 돌려받으려 하자 A씨가 냉정하게 거절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철저히 범행을 준비했다. CCTV에 찍히지 않으려 큰 등산용 모자를 썼고 무엇보다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기발한 ‘트릭’을 썼다. 자신의 차에 보관 중이던 피해자 A씨의 등산화(240㎜)를 억지로 구겨 신고 범행 현장을 누빈 것이다. 본래 260㎜의 발을 가진 그였지만 경찰이 여성이나 발 작은 남자를 범인으로 오해하게 하려는 교묘한 수법이었다.

경찰들이 시신을 암매장한 집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KBS 캡처


“몸은 마루에 있고, 머리는 침대 밑에...”사건이 종결되려는 찰나 담당 형사는 C씨의 눈빛에서 묘한 떨림을 읽어냈다. 2년 반 전 ‘단순 가출’로 처리됐던 C씨 아내(58)의 실종 사건이 뇌리를 스쳤다. 형사가 아내의 행방을 추궁하자 그의 태도가 급변했다.

“부인은 어디에 있나요?”

한참의 침묵 끝에 C씨가 뱉은 첫마디는 “집요하다”는 것이었다. 형사가 재차 물었다. “만기가 다가오던데 보험금 타려고 그간 숨어 지낸 건가요?” 그러자 그는 체념한 듯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몸은 마루에 있고 머리는 안방 침대 밑 바닥에 있어요.”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목수 출신이었던 C씨는 2002년 10월 자신의 목공소에서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다음 날 집 안 마루 밑에 묻었다. 살해 동기는 기가 찼다. “여자가 남편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초 집 보수공사를 하면서 그는 아내의 시신을 꺼내 머리와 몸통을 분리했다. 처음 묻으려던 현관 마루 쪽이 비좁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몸통은 거실 마루 아래에, 머리는 자신이 매일 잠드는 안방 침대 밑 바닥에 나누어 매장했다. 그 위를 콘크리트와 마감재로 덮어 완벽히 은폐한 채 그는 3년 동안 아내의 시신 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생활해 온 것이다.

연쇄 살인마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15년’두 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연쇄 살인 범죄였지만 법원의 최종 판결은 세간의 예상과는 달랐다. 재판부는 C씨에게 무기징역이 아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범행 수법이 극도로 엽기적이고 잔인하며 아내의 시신 위에서 생활한 비인간적인 면모는 중형이 마땅했으나 재판부는 몇 가지 양형 이유를 들었다. 피고인이 60대의 고령이라는 점, 수사 과정에서 여죄를 스스로 자백하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였다는 점 등이 참작됐다. 피해자 가족들과의 합의 여부 및 우발적 동기 등 당시의 법적 잣대는 오늘날의 법 감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결과였다.

정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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