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영·프, 우크라에 ‘핵폭탄 이전’ 준비” 충격 주장…세계전쟁 경고 속내는 [월드뷰]

권윤희 기자
수정 2026-02-25 05:30
입력 2026-02-25 05:30
크렘린궁 “종전 협상에서 고려할 것”
영·프·우크라, 일제히 “거짓” 반박
러시아가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이전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종전 협상에서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다. 서방은 즉각 “허위 정보”라며 반박했지만, 러시아가 협상과 억제, 여론전을 위해 ‘핵 리스크’ 프레임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개시 4주년 성명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로의 핵무기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VR은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가 핵폭탄 또는 최소 ‘더티밤’(dirty bomb·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재래식 폭탄)을 보유한다면 전쟁 종식에 더 유리한 조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또 양국이 우크라이나에 핵무기와 운반체계를 제공하면서 마치 우크라이나가 자체적으로 확보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 한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맥락에서 전체 비확산 체제에 위협이 되는 사안”이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 협상에서 이러한 계획을 고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이 문제를 미국에도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을 중재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반박했고, 프랑스 외무부는 “노골적 허위정보”, 영국 총리실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는 전쟁 중인 나라에 핵무기를 직접 이전하는 것이다. 세계전쟁으로 가는 직접적인 길”이라며 “이 경우 러시아는 비전략 핵무기를 포함해 모든 무기로 우리나라에 위협을 주는 우크라이나 내 목표물을 타격해야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공급하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러시아와 핵 충돌을 하는 공범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는 러시아가 권리를 가진 비례적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핵 이전 현실성 낮지만…협상 프레임 선점 시도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에 핵무기 또는 핵무기 통제권을 이전하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계와 정면충돌 소지가 있어 정책적·법적 실행 난도가 극단적으로 높다. 실제 실행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핵 이전’ 주장을 전쟁 4주년에 맞춰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종전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러시아가 관련 주장을 ‘비확산 위기’로 격상할 경우 향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 군사역량 제한이나 서방 군사지원 축소 같은 조건을 요구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핵 확전 공포를 부각해 유럽 내 정치적 부담을 높이면 장거리 무기 지원이나 안전보장 논의 자체를 둔화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가 이 사안을 협상 지렛대 삼고 미국에 브리핑하겠다고 밝힌 점은 중재자인 미국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를 압박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핵 리스크’ 내러티브 확대…서방 결속 약화 노림수러시아가 관련 목적 달성을 위해 최근 유럽 내 핵 억지력 확대 논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4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 정상들은 러시아 위협과 미국 안보 전략 변화에 대응해 핵 억지력 강화를 강조했다.
유럽연합(EU) 내 유일한 핵보유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안보 구조 재편과 핵 억지력 재정의를 언급하며 유럽 차원의 핵 역할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서 유럽 동맹국에 핵우산을 제공해 온 영국도 핵 억지력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이런 논의를 ‘우크라 핵무장 시도’와 연결짓고 비약·왜곡해, 서방 결속을 약화시키고 협상 명분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페스코프 대변인이 “비확산 체제 위협”을 강조한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러시아 국내 여론전·확전 명분 축적 가능성도러시아의 이번 주장은 서방에 대한 압박뿐 아니라 국내 여론 결집을 위한 정보전 성격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방의 핵 확산 시도’라는 서사는 전쟁 정당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핵무기 이전이 현실화될 경우 공급국까지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러시아 측 강경 발언은 향후 군사 대응의 명분을 사전에 축적하려는 억제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러시아는 그간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사용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제기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크라이나가 더티밤을 사용할 경우 “마지막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협상과 억제, 여론전을 결합한 삼각포석 전략 차원에서 핵 위협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실제 군사 조치보다는 협상 레버리지 확보와 서방 내부 균열 유도를 목표로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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