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없어도 내 동네 좋다” 인구 감소 지역의 ‘기묘한 행복’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수정 2026-02-22 16:11
입력 2026-02-22 14:05

고독사 낮춘 공동체
자살률 높인 인프라 공백

AI이미지. 서울신문 DB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김모(82) 씨의 하루는 이웃의 문안 인사로 시작된다. 거동이 불편해 집 밖에 나서지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누군가 대문을 두드린다.

“병원 한 번 가기 어려운 마을이라지만 내겐 서울보다 안전해. 적어도 혼자 숨을 거둘 일은 없으니까.” 김 씨의 말은 단순한 애착을 넘어 대도시가 상실한 공동체의 단면을 보여준다.


인구 감소 지역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와 정주 의사(계속 살고 싶은 마음)가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2일 한국인구학회 학회지에 실린 ‘지역사회조사 주관 지표 분석’에 따르면 89개 인구 감소 지역 주민의 정주 의사는 4.047점으로 전국 평균(3.761점)을 웃돌았다. 삶의 만족도 역시 6.454점으로 전국(6.393점)보다 높았다. 소득과 주거환경 만족도는 낮았지만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공동체 의식(3.282점)이 결핍을 메운 결과다.

공동체가 메운 ‘생활 여건’의 빈자리
서울신문 DB


이런 특성은 고독사 통계와 극명히 대비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고독사의 52.2%가 서울·경기·부산 등 대도시권에 집중됐다. 반면 전남(2.5%), 충북(3.3%), 강원(3.4%) 등은 2~3%대에 그쳤다. 관계망이 취약한 도시와 달리 인구 감소 지역은 촘촘한 유대감을 기반으로 고립을 완충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공동체의 온기만으로 메울 수 없는 인프라 절벽이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감소 지역 89곳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6.3명으로 전국 평균(29.1명)보다 7.2명 높았다. 자살률 상위 10개 지역은 모두 인구 감소 지역이었으며 충남 청양군(60.3명)과 강원 홍천군(59.9명)은 전국 평균의 두 배를 상회했다.

자살률·건강수명…수치가 드러낸 인프라 공백
서울신문 DB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도 궤를 같이한다. 2023년 기준 농촌 자살률은 도시보다 1.2배 높았고 65세 이상이 전체 자살 사망의 40%를 차지했다. 끈끈한 유대감조차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만성 질환의 고통과 의료 공백의 무게가 그만큼 파괴적임을 시사한다. 노인 자살을 추동하는 우울과 빈곤이 열악한 복지 인프라와 결합해 공동체의 안전망을 뚫고 있는 형국이다.

건강수명 격차도 뚜렷하다. 2022년 기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건강수명은 평균 72.85세였지만 전남 해남(63.57세), 전북 고창(64.36세), 부산 영도(64.26세)는 60대 초중반에 머물렀다. 지역 간 차이는 최대 10년에 이른다. 삶의 만족도와 별개로 ‘생존의 질’에서는 명확한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높은 정주 의사는 공공 지원의 성과라기보다 열악한 여건을 공동체로 버텨온 결과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구진은 인구 감소 지역을 ▲생활 여건 양호형 ▲저활력 기초복지형 ▲공동체 친화형 등으로 세분화해 맞춤형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순 인프라 확충을 넘어 공동체 자원을 보존하면서도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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