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부담금, 건강도 재정도 잡을 수 있을까

이현정 기자
수정 2026-02-15 14:00
입력 2026-02-15 14:00
가당 음료에 부담금을 매기면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나라 살림의 빈틈을 메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비만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빠르게 늘면서 ‘설탕부담금’ 도입 논의가 다시 제기됐다. 계기는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소셜미디어(SNS)에 “담배처럼 설탕에 부담금을 매겨 사용을 줄이고 그 재원을 지역·공공의료 강화에 쓰자”는 글을 올렸다. 단순한 당 섭취 억제를 넘어 지역 필수의료에 투자할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국회에서도 가당 음료에 부담금을 신설해 비만 예방과 지역·필수·공공의료에 쓰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소비를 줄이고 걷은 재원을 다시 건강 정책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이다. 보건과 재정을 함께 겨냥한 설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세계는 이미 ‘설탕과의 전쟁’이미 세계는 ‘설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멕시코 등 120개국 이상이 가당 음료에 세금이나 부담금을 매겼다. 2018년 도입된 영국의 설탕부담금은 100㎖당 당 함량을 기준으로 차등을 둔다. 5g 이하는 면세, 5~8g은 ℓ당 약 332원, 8g 이상은 약 443원을 부과한다. 세수를 늘리려는 조치라기보다 제조사가 당 함량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보건학계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설탕이 아니라 ‘유리당(free sugar)’이다. 과일에 든 당은 섬유질과 함께 흡수돼 혈당이 비교적 완만하게 오른다. 반면 음료에 첨가된 시럽은 체내에 빠르게 흡수되면서 혈당을 급격히 끌어올린다. 포만감도 낮아 많이 마시게 된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정책·관리연구소 교수는 지난 10일 국회 토론회에서 “가당 음료는 영양적 가치가 거의 없는 비필수 식품에 가깝다”며 “성인보다 자기통제가 어려운 소아·청소년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부담금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10~18세 청소년이 가당 음료를 통해 섭취하는 설탕은 하루 평균 16.7g으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다. 청소년 비만은 단순한 체중 증가를 넘어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의 조기 발병 위험을 높인다.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의 비만율이 높게 나타나는 점도 눈에 띈다. 한국 성인의 과체중·비만율은 36.5%로 일본(26.0%)보다 높고, 증가 속도 역시 가파르다.
가격 1% 오르면 소비 0.8~1.3% 감소
연간 2000억원 재원 확보 가능정책 효과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지표가 ‘가격 탄력성’이다. 가당 음료의 가격 탄력도는 -0.8에서 -1.3 수준으로 분석된다. 이는 가격이 1% 오르면 소비가 0.8~1.3%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값이 오를수록 소비도 눈에 띄게 감소한다는 의미다.
영국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 상당수 제조업체가 당 함량을 낮췄고 음료의 평균 당 함량도 두 자릿수 비율로 줄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설탕이 비만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가당 음료를 통한 설탕 섭취를 줄이는 데는 일정한 효과가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재정 효과 역시 논의의 한 축이다. 영국 사례를 우리 경제 규모에 단순 대입하면 연간 2000억원 안팎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현행 가당 음료 소비량을 그대로 가정할 경우에는 6000억~7000억원 규모까지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제조사가 당 함량을 낮추거나 실제 소비가 줄어들면 걷히는 돈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책이 기대한 대로 작동할수록 세수는 줄어드는 구조다.
“사실상의 세금” vs “건강 격차 완화 가능”
쟁점은 역진성이다. 가당 음료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상욱 한국식품산업협회 식품안전본부장은 “설탕부담금은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세금”이라며 “비만은 식습관과 활동량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설탕 섭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찬성 측은 비만 위험이 큰 계층의 소비를 줄이고 확보한 재원을 취약계층 청소년의 급식 개선이나 체육활동 지원 등에 투입한다면 장기적으로 건강 격차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빠르게 확산하는 ‘제로 음료’도 변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무당 감미료가 단기적으로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건강 효과는 분명하지 않고 잠재적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인공감미료까지 부담금 대상에 포함할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아·청소년이 주로 소비하는 액체 형태의 가당 음료에 한해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박 교수는 “정책의 1차 목적은 소아·청소년의 과도한 가당 음료 섭취를 줄이는 데 있다”며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하기보다 청소년 음료에 집중하는 편이 정책 취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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