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야 보드 타자”…김상겸·유승은·최가온 뒤에 ‘스님’ 있었다

김유민 기자
수정 2026-02-13 10:51
입력 2026-02-13 09:01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스노보드가 잇따라 메달을 따내며 주목받는 가운데, 그 배경에 20년 넘게 설상 종목을 뒷받침해온 한 스님의 존재가 재조명되고 있다. ‘스노보드의 대부’로 불리는 호산스님(61)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 주지로 있는 호산스님은 지난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이 모두 너무 애를 많이 썼다”며 대표팀의 선전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으로 한국 첫 메달이자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을 딴 김상겸(37·하이원), 빅에어에서 한국 여자 스키·스노보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유승은(18·성복고),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스키 첫 금메달을 일군 최가온(18·세화여고) 등 상당수가 이른바 ‘달마 키즈’다.
이들은 2003년부터 불교계가 이어온 ‘달마배 스노보드 대회’ 출신이거나 후원을 받은 선수들이다. 대회를 이끌어온 인물이 바로 호산스님이다.
스님이 스노보드를 처음 접한 건 1995년. 봉선사 인근 스키장에서 무사고 기도를 부탁받아 갔다가 이용권을 받았고, 그곳에서 보드에 빠져들었다. 당시만 해도 보더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은 “보드를 탈 때 느끼는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며 “불교가 추구하는 생사해탈의 자유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젊은 선수들과 어울리며 짜장면을 사주고, 훈련 고민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후원에 나섰다. 국내 훈련 환경이 열악해 선수들이 아르바이트로 전지훈련비를 마련하는 현실을 보고 대회를 만들었다. ‘달마배’라는 이름도 선수들이 직접 지었다.
상금과 운영비는 스님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한 번 대회를 여는 데 5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들지만, 불교계와 기업 후원이 이어지며 20년 넘게 명맥을 이어왔다. 한때는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 포인트가 인정되는 국제대회로 치러지기도 했다.
평창에서 한국 스키 사상 첫 메달을 안긴 이상호를 비롯해 김상겸, 최가온 등도 이 대회를 거쳤다. 후원을 받았던 선수들이 자라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후배를 위해 다시 기부에 나서는 선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호산스님은 “복은 바라지 않고 짓는 것”이라며 “내가 준 것만큼 이자가 붙어 다른 데서 돌아온다”고 했다. 현재는 주지 소임으로 바쁘지만, 동안거가 끝나면 여전히 스키장을 찾는다. 예순의 나이에도 최상급 코스를 탈 만큼 몸이 보드를 기억한다고 한다.
올해 달마배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유망주가 함께하는 ‘뒤풀이’ 형식으로 준비 중이다. 스님은 “스노보드에 대한 관심이 반짝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며 “국내에서도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 너무 큰 것을 이룬 ‘배추보이’ 이상호 선수나 은퇴를 고민했던 맏형 상겸이나 모두 굉장한 스토리가 있다”며 “정말 영화로 만들고 싶다. 제목은 ‘달마야 보드 타자’ 어떻습니까?”라며 웃었다.
김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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