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사라진다”… 그림으로 건네는 4·3의 위로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수정 2026-02-15 08:00
입력 2026-02-15 08:00

오명식 세 번째 개인전 ‘4·3과 그리움’
21일부터 26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전시
외조부·증조부도 4·3때 희생 개인 가족사
4·3 아픔 겪은 어르신 찾아 영상·그림으로 남겨

2025년 9월 기준 제주 4·3희생자는 1만 5088명. 그분들이 잠든 자리에는 작은 동백 꽃봉오리가 피어났고 타오르는 태양처럼 붉은 동백꽃으로 질기게 살아남았다. 오명식 작가 제공


1949년 1월 17일 북촌리에서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 주민 400여명이 한날 한시에 희생됐다. 오명식 작가의 ‘북촌리 윤슬’. 오명식 작가 제공


“작품으로 형상화되지 않으면 역사는 쉽게 잊혀버린다.”


제주 4·3의 기억을 ‘연민의 이미지’로 풀어낸 오명식(51) 작가가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 번째 개인전을 열며 “현기영(‘순이 삼촌’ 작가) 선생의 말을 믿고 실천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시 주제는 ‘4·3과 그리움, 어둠에서 빛으로 그 기억을 잇다’. 오는 21일부터 26일까지 제주문예회관 2층 제3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4·3 유가족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 25점이 걸린다. 아크릴 물감에 머리카락과 제주 화산석을 결합한 독특한 재료가 특징이다. ‘죽음과 삶’, ‘78년 만에 만남’, ‘훠이휘이’ 등은 개인의 상실과 공동체의 기억을 동시에 호출한다. 작가는 전시 기간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 도슨트를 진행하며 관람객과 직접 대화한다.



오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특전사 하사관 출신으로, 미용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기능장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자신이 화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미술학과에 다시 입학하며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씨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개념을 빌려 그의 작업을 설명한다. ‘연민은 타인의 불행을 염려하는 감정이며, 비극은 슬픔과 두려움, 의분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통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결국 기억은 인간 존재를 역사 속에 남기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라는 해석이다.

오 작가의 작품은 거대한 역사 대신 개인의 삶에서 출발한다. ‘꿈에서라도’는 가족을 잃은 노년의 고독을, ‘옴팡밭’은 학살의 공포를, ‘이제랑 편히 쉽써’는 희생자 1만 5088명의 이름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눈물꽃’, ‘북촌리 해녀’, ‘북촌리 윤슬’ 등은 제주 공동체가 감내해온 시간의 무게를 시각화한다.

작품 ‘북촌리 윤슬’ 작업을 하고 있는 오명식 작가.‘


1만 5088명의 눈물꽃. 오명식 작가 제공


오명식 작가는 4·3의 아픔 겪은 가시리마을 어르신들 찾아 영상과 그림을 남겼다. 오명식 작가 제공


제주 4·3은 오랫동안 금기의 역사였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되며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2014년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역사적 위상은 달라졌다. 그러나 개인의 삶과 상처까지 충분히 조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해서 4·3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 손에 이끌려 찾았던 4·3평화공원의 의미를, 부모가 된 뒤에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에게 4·3은 사건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다.

가시리 중산간 마을에서 자란 그는 오랫동안 4·3을 과거의 일로만 여겼다. 그러나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뒤, 그 시대가 품고 있던 침묵과 고통을 비로소 마주하게 됐다. 이후 부모 세대를 헤아리지 못한 뒤늦은 깨달음은 가시리 마을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이어졌고 4·3을 겪은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사라지기 전에 기록되어야 할 증언들을 영상과 그림으로 남겼다.

그리고 이 작업은 1949년 1월 17일 참혹한 대학살이 벌어졌던 북촌리로 확장됐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림으로 옮기며 작은 위로를 건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할아버지만 4·3때 희생된 줄 알고 살아왔지만 몇년 전 증조부도 그 당시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개인의 가족사가 역사와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작업은 4·3을 거대한 역사 서술이 아닌 개인의 기억과 삶 중심으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관람객이 작품 속 이야기와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아는 역사’가 아닌 ‘느끼는 역사’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그는 “제주 4·3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라며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 누군가를 위로하고 감동과 울림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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