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철 “재해석 아닌 그 자체로…꿈을 향해 계속 춤추고 싶다”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2-04 17:32
입력 2026-02-04 17:32
마린스키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전민철이 일본 도쿄에서 공연한 ‘제니스 오브 발레’ 포스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본무대예술진흥회(NBS) 제공


지난달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일본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제니스 오브 발레’ 공연을 끝낸 발레리노 전민철(22)에게는 행복감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일본무대예술진흥회(NBS)가 올린 공연엔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질 로망을 비롯해 윌리엄 브레이스웰·마리아넬라 누네즈·다카다 아카네(영국 로열발레단), 위고 마르샹(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디아나 비슈네바(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등 이름만으로 발레팬들을 두근거리게 하는 세계적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들이 출연했다. 전민철과 메이 나가히사는 마린스키의 퍼스트 솔리스트로서 한무대에 섰다.

둘째 날 공연 후 호텔에서 만난 전민철은 ‘차이콥스키’ 파드되(2인무)에서 착지할 때 살짝 흔들렸던 걸 두고 “아쉬운 마음이 공연 끝까지 가더라”고 했다. “대단한 캐스팅 속에서 부담을 가졌던 듯하다”고 돌이켰다. “그들의 춤을 보고 이야기하면서 발레단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는 그는 “시야를 많이 넓혔다”면서 이번 공연의 의미를 찾았다.


전민철은 지난해 10월 마린스키에 입단했다. 김기민(34) 수석무용수 이후 두 번째 한국인 발레리노다. 신입인데도 수석무용수 바로 아래 등급인 퍼스트 솔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때인 2024년 9월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의 주역 솔로르로 전막 데뷔했고, 지난해 4월 같은 발레단 ‘지젤’에 알브레히트를 맡아 전석 매진시키며 실력과 스타성을 입증했다. 마린스키 정식 입단 후 지난해 말 ‘호두까기 인형’에 이어 오는 28일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오른다.

일본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열린 ‘제니스 오브 발레’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파드되(2인무)를 추는 전민철(오른쪽)과 나가히사 메이.
ⓒKiyonori Hasegawa


그는 마린스키에서 훈련한 지난 석 달 사이 체력이 훨씬 좋아졌고 점프가 더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마린스키는 작품 수도, 공연 횟수도 많아 일주일간 작품을 준비하고 공연한 뒤에 바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 “무대에 많이 서야 체력이 생긴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느꼈습니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컨디션이 안정되는 경험도 했고요.”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파트너의 중심축과 점프 타이밍을 빠르게 파악하는 감각도 키웠다.



지도위원인 유리 파테예프 전 마린스키 예술감독의 조언으로 점프 방식도 고쳤다. 그의 장점인 ‘가볍게 뛰고 사뿐히 내려앉는 점프’에 힘있게 높이 올라가는 방법을 얹어 그의 점프는 체공 시간이 더 길고 우아해졌다. “준비 단계의 움직임, 허벅지를 활용하는 방법 등을 바꾼 게 매우 큰 도움이 됐다”고 부연했다.

2024년 7월까지 18년간 마린스키 예술감독을 지낸 파테예프가 지도위원인 점은 그의 성장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파테예프는 ‘우아하고 귀족적인’ 마린스키의 정수를 가장 잘 계승하는 인물로 ‘음악과 춤의 일치’, ‘대사를 하듯 보여주는 춤’을 지향한다. 전민철은 “파테예프는 상상이 되지 않으면 발레가 아니라는 말씀을 한다. 손짓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하고, 흘러가는 멜로디 안에 숨어 있는 특정 음까지 표현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열린 ‘제니스 오브 발레’에서 ‘차이콥스키’ 파드되(2인무)를 추는 전민철(오른쪽)과 나가히사 메이.
ⓒKiyonori Hasegawa


레오니트 라브롭스키 안무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앞둔 그에게는 파테예프의 지도와 자신의 해석을 몸으로 풀어내는 게 숙제다. 한국에서 익숙한 케네스 맥밀런 버전과 달리 라브롭스키 버전은 격정적인 로미오가 특징이다. 그는 비슈네바와 블라디미르 슈클랴로프의 2013년 공연 영상을 보여주며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로미오를 표현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영상을 보고 있다”고 했다. “‘나만의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것보다 그 캐릭터 안에 완전히 들어가고 싶어요. 누가 봐도 이질감 없이 ‘로미오 그 자체’라는 말이 나오도록 연기하는 게 지금의 목표입니다.”

어린 나이에 마린스키에 입단하고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는 특별하다거나 성공했다는 표현 대신 “내 삶을 살고 있고 꿈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꺼냈다. 한예종 영재원 때부터 은사이자 멘토인 조주현 한예종 무용과 교수의 여러 조언을 되새기면서 들뜨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왕관을 스스로 쓰려고 하지 말아라’, ‘항상 땅을 밟고 있어라’, ‘풍선이 뜨려고 하면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댔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음 목표를 설정하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계속 춤을 추는 것, 그게 다음 꿈입니다.”

일본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열린 ‘제니스 오브 발레’에서 ‘차이콥스키’ 파드되(2인무)를 추는 전민철.
ⓒKiyonori Hasegawa


도쿄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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