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1심 무죄 뒤집힌 이유는…“재판에 실질 개입하면 직권남용”

서진솔 기자
수정 2026-02-01 15:08
입력 2026-02-01 15:08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직권남용죄의 범위에 대해 대법원 판례와 다른 법리 해석이 나오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4부(부장 박혜선)는 지난달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 1심 무죄를 뒤집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원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은 대법원장의 직무상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므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에 개입하는 행위가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 법관 등을 상대로 사법행정사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 및 협조받는 것으로 보여도 실질적으로 법원의 구체적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면 정당한 권한 이외의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의 독립성 보호’를 내세워 1심 논리를 반박했다. 재판부는 “원심에 따르면 중하게 보호해야 하는 ‘재판 사무의 핵심 영역’에 관해 언제나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 결론에 이르게 돼 재판의 독립을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 관여 행위는 사건 관계인이나 일반인 입장에서 재판이 사법 행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 의심할 외관에 해당하고, 이는 재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취소하게 한 혐의, 2015년 11월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의 1심 결과가 뒤집히도록 서울고법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가 유죄로 판단됐다.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검찰이 적용한 나머지 45개 혐의는 무죄로 결론 내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이 상고 방침을 밝히면서 대법원이 기존 판례와 다른 2심 판결에 대해 심리하게 됐다.
항소심 판단이 양 전 대법원장 외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관련 혐의로 기소된 14명의 전·현직 법관 중 유죄 선고를 받은 건 5명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나머지 9명은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거나 무죄 선고에 관한 상고심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2022년 4월 대법원에서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법리에 따라 무죄가 확정됐다.
서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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