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오게 하는 방법/현정아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동화]

수정 2026-01-01 00:46
입력 2026-01-01 00:46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택배 기사가 수레를 끌고 내렸다. 지우는 설레는 마음으로 10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현관 앞에는 택배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평소에는 택배를 발로 밀어 신발장까지 옮겼지만 오늘은 하나하나 손으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때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지우야. 학교 잘 다녀왔어? 얼른 손부터 씻고 와. 물로만 대충 씻지 말고 비누칠해서 꼼꼼히! 그리고 냉장고에 과일 깎아 놓은 거 있어. 꺼내 먹고 영어 학원 숙제하고 있어.”


“알겠어 알겠어. 잠깐만. 나 택배 좀 뜯어 보고. 내 잠옷 왔어?”

금요일인 내일은 같은 반 친구 승희의 아홉 번째 생일이다. 생일 기념으로 승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지우는 입고 갈 만한 잠옷이 없었다. 온통 소매가 짧아진 것뿐이었다.

지우의 물음에도 엄마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지우는 급한 마음에 가위도 없이 택배 상자와 비닐을 있는 힘껏 찢었다.



“없어! 없다고! 왜 내 것만 안 온 거야! 내일 그 잠옷 꼭 입어야 한단 말이야!”

지우는 엄마가 들으라는 듯 짜증을 냈다.

“지우야. 엄마 좀 이따 회의 들어가야 해. 손 씻고 과일 꼭 챙겨 먹고 가. 알겠지?”

거실 TV 아래에 놓인 작은 CCTV에서 더이상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칫, 맨날 자기 할 말만 하고….”

두 달 전 엄마 아빠는 거실에 처음 CCTV를 설치했다. 교대 근무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뒤죽박죽인 아빠와 다시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 때문에 지우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섯 살 동생 정우는 눈사람처럼 생긴 CCTV를 장난감인 줄 알고 좋아했다. 사람 움직임에 따라 머리도 움직일 수 있고 엄마 아빠 목소리도 나오니 비싼 로봇 장난감이라도 생긴 줄 알았나 보다. 지우도 정우처럼 처음엔 CCTV가 마음에 들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마다 CCTV로 엄마 아빠가 지켜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냉장고에는 아침에 깎아 놔서 갈색이 되어 버린 사과 다섯 조각과 귤 두 개가 반찬통에 담겨 있었다. 지우는 냉장고 문을 열고 선 채로 엄마가 껍질까지 까 놓은 귤 하나를 집어서 입에 통째로 넣었다. 그때 CCTV에서 또다시 엄마 목소리가 들려 왔다.

“김지우!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서서 먹으면 어떡해! 문 닫고 식탁에 제대로 앉아서 먹어!”

“으윽. 잔소리. 엄마 회의 간다며! 안 가?”

지우 말에 이번에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지우는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고 냉장고 문을 쾅 닫았다. 엄마는 바빠 죽겠다면서 꼭 이런 순간에만 귀신같이 나타났다 사라져 버렸다. 지우에게 CCTV는 이제 더이상 자신을 지켜 주는 친구가 아니라 지우를 감시하고 귀찮게 하는 기계일 뿐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정우와 놀이터에 나가 있던 아빠가 집에 돌아왔다.

“오! 내 택배인가?”

지우는 아빠가 가지고 들어온 택배부터 허겁지겁 뜯었다. 비닐을 뜯자마자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강아지 캐릭터가 그려진 보드라운 수면 잠옷이 나타났다. 입자마자 잠이 들 것 같은 부드럽고 포근한 잠옷이었다.

“아빠! 내일 내 잠옷이 제일 귀엽겠지? 응?”

“내 꺼는! 내 것도 사 줘! 나도 누나처럼 저런 잠옷 사 달라고! 으아아앙.”

아빠는 정우를 달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곧 출근해야 되는데 언제 와?”

엄마는 오늘도 야근이었다. 할 수 없이 아빠는 오늘도 지우에게 이 한마디를 남기고 출근을 했다.

“지우 너만 믿는다! CCTV로 보고 있을 테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엄마 올 때까지 정우랑 잘 있어. 알겠지?”

벌써 며칠째 반복되는 일이었다. 정우는 오늘도 엄마 아빠 없이 울다 지쳐 잠들고 말았다. 이런 날은 지우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걱정 없었다. 입자마자 스르르 잠이 올 것 같은 포근한 새 잠옷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새 잠옷도 소용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으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일이 더 느리게 오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우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오늘은 무조건 아빠 출근하기 전에 와야 해! 나 오늘 학교 끝나고 바로 승희네 집 가는 거 알지?”

엄마는 아침 식사와 출근 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알겠어, 알겠어.”

지우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생일 주인공인 승희는 레이스가 잔뜩 달린 공주 드레스 잠옷을 꺼냈다.

“예쁘지? 우리 아빠가 유럽 출장 갔다가 사 온 거다? 엄청 비싼 거래.”

모두 승희의 잠옷을 부러운 듯 쳐다봤다. 하지만 지우의 취향은 아니었다. 지우는 예쁜 것보다 귀여운 게 더 좋았다. 지우는 자기 잠옷보다 더 귀여운 잠옷을 가지고 온 친구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드디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방 속에 있는 잠옷을 집는 순간, 방문을 열고 승희 엄마가 들어왔다.

“지우야 어쩌지? 오늘 엄마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지우가 집에 와야 할 거 같다는데? 안 그럼 동생이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면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지우는 CCTV 위에 잠옷을 세게 집어 던졌다.

“지우야….”

두꺼운 잠옷에 가려진 CCTV에서 엄마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아무 말도 하지 마! 듣기 싫어!”

“지우야. 알겠어. 일단 잠옷 좀 치워 봐. 하나도 안 보여.”

“보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나도 엄마 못 보잖아. 내 말도 안 들어 주잖아! 약속도 지키지도 않고! 계속 그 안에서 혼자 보고 혼자만 말할 거면 평생 거기서 살아!”

지우는 홧김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지우가 울자 정우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잠옷에 덮여 엄마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작아졌다.

“지우야…. 지우야….”

지우는 이 모든 게 저 CCTV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CCTV가 없을 때는 이렇게 지우와 정우만 집에 두고 엄마 아빠가 사라지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우야! 우리 저 CCTV를 부숴 버리자! 그럼 엄마도 예전처럼 빨리 올 거야!”

정우는 지우 말을 듣자마자 방에서 커다란 카봇 로봇을 가지고 왔다.

“얘가 내 장난감 중에 제일 힘 센 애야! 얘는 뭐든지 다 무찌를 수 있어!”

정우는 CCTV를 덮고 있던 잠옷 위로 로봇 다리를 내리찍었다.

“이야아아아아압!!! 퍽! 푹! 퍽! 퍼억!”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지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빠가 정우에게 선물한 장난감 자동차를 발견했다. 정우 옆에 지우까지 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자동차였다.

“정우야! 얼른 타!”

운전대를 잡은 지우 옆에 정우가 앉았다. 이제 바닥에 내려놓은 CCTV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

“자! 간다! 출바아아알!”

그때였다.

“잠깐! 잠깐만!”

CCTV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였다.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고 어릴 적 엄마가 읽어 주던 동화책 속 호랑이 목소리 같기도 했다.

“지금 날 밟고 지나가면!”

3초 정도 시간이 지나고 CCTV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너희 엄마는 영원히 이 안에 갇히게 될 거다! 혹시라도 내가 부서지면 너희 엄마도 같이 부서지는 거야! 알겠니?”

지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장난감 자동차의 액셀에서 발을 뗐다.

“뭐, 뭐라고? 역시 네가 범인이었구나? 우리 엄마를 뺏어간 게. 당장 우리 엄마 돌려줘! 돌려주란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난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 잠도 못 자고 일해 왔다고! 그리고 이건 네가 바라던 거 아니었어? 아까 전에 분명히 그랬잖아. 엄마보고 평생 이 안에서 살라고.”

“그, 그건, 화가 나서 했던 말이고! 우리 엄마 어딨어! 당장 우리 엄마를 돌려줘! 당장!”

지우는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진짜 CCTV에 갇힌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통화 연결음만 계속 나올 뿐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진짜 저기 갇힌 거야?”

지우가 울먹거리자 정우가 CCTV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아!”

그때 지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CCTV에서 다시 엄마 목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 말이다.

“김정우! 너는 화장실 불이랑 안방 불이랑 작은 방 불 다 켜고 와! 얼른!”

“응? 그럼 엄마한테 혼나는데….”

“바보야. 엄마가 다시 나타나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고! 얼른!”

정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신나게 불을 켜고 다녔다. 지우는 냉장고 앞에 서서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 숨을 깊게 내쉬고 비장한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만큼은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지우는 냉동실 문까지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정우와 지우가 이런 행동을 할 때면 엄마는 셋을 세기도 전에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하나, 둘….”

지우는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숫자를 셌다. 이렇게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진 적은 처음이었다.

“셋!”

그 순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엄마가 들어왔다.

“김지우! 김정우! 지금 방마다 불 다 켜놓고 뭐 하는 거야! 지우 너는 냉장고 냉동실 문까지 열어젖히고 거기서 뭐 해! 빨리 안 닫아?”

“엄마!”

지우와 정우는 단숨에 엄마 품으로 뛰어가 안겼다.

“내가 빨리 오라고 했지! 이제 오면 어떡해!”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지우는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 저 CCTV 그냥 없애면 안 돼? 나 쟤 너무 무서워.”

방금 전까지 지우와 정우를 협박하던 CCTV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실 바닥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이렇게 놓여 있어? 아니, 그리고 밖에서 타는 정우 자동차를 거실로 가져오면 어떡해! 바닥에 바퀴 자국 좀 봐! 어휴. 정말 엄마 없으니 집 꼴이 말이 아니네.”

엄마는 CCTV의 전원 코드를 빼며 말했다.

“당분간 엄마 휴가 냈으니까 이건 어차피 필요 없어.”

엄마가 CCTV를 상자에 넣었다.

“정말? 그럼 이제 정우랑 나만 두고 사라지는 거 아니지?”

“사라지긴 누가 사라져. 이번 달만 지나면 아빠 새벽 근무도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엄마가 휴가 내기로 한 거야. 이제 오늘 같은 일 절대 없을 거야.”

며칠 뒤 지우는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잠옷을 입고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지우 옆에는 호랑이 무늬가 그려진 잠옷을 입은 정우도 서 있었다.

“어서 와!”

지우 집에서 열리는 첫 파자마 파티였다. 엄마는 지우 방으로 과일과 간식들을 건네 주었다. 그때 호랑이 내복을 입은 정우가 호랑이 흉내를 내며 지우 방으로 들어왔다.

“젤리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정우가 귀엽게 얘기하자 승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야! 무슨 호랑이가 그러냐? 하나도 안 무섭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정우야! 호랑이는 이렇게 말해야지!” 하며 시범을 보였다.

“어! 이 목소리!”

지우와 정우의 눈이 마주쳤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였다. 지우와 정우는 엄마를 바라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뭐야! 엄마였잖아!”
2026-01-01 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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