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핵잠수함 내부에 있다’·‘닭의 모가지 비틀면 새벽은 오지 않는다’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수정 2025-12-04 09:00
입력 2025-12-04 00:03
진중하되 새로움은 잃지 않았다. 탄탄한 시력(詩歷)은 시에 깊이를 더해준다. 반가운 중견 시인들이 묵직한 안부를 건네왔다.

“죽음 이후는 어떤 열기의 시작이다./죽음은 반드시 부패라는 문턱을/넘는다. 부패는 생의 반응이고 멸의 느낌이다./부패는 생각의 힘이다.”(채호기, ‘부패는 생각의 힘이다’ 부분)

시인 채호기



시인 채호기(68)의 열 번째 시집 ‘이상한 밤’(문학동네)은 무척 두꺼운 시집이다. 288쪽으로 총 145편이나 되는 시가 실렸다. 통상 시집 한 권이 120쪽 안팎, 50~60편 정도의 시가 담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의 시집 두 권 정도의 분량이 하나로 묶인 셈이다. 더구나 전작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창비)는 지난 2월에 나왔다. 고희를 앞두고도 시인의 샘은 아직도 철철 흘러넘치는 듯하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후배 문인들을 길러냈다.

시집 후반부에서 종말을 향해 치닫는 문명을 향한 위기의식도 돋보인다. “우리는 발밑 모래가 물결에 조금씩 쓸려 호흡이/가빠지고 끊어지는, 아주 느리게 침몰하는/엄청난 위력의 기후 핵잠수함 내부에 들어 있다.”(채호기, ‘기후 위기’ 부분)

시인 백무산




시인 백무산(70)의 열한 번째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창비)는 단단한 문장 안에 우리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면서 1984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에서 보듯 그의 시는 노동의 현장에서 문제의식을 길어 올린다. 직설적인 문장이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든다.

“구별하여 확정한다는 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나/아우슈비츠에서, 베트남에서, 제주도에서, 형제복지원에서 … 씨를 말리지 않으면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확신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백무산, ‘악의 우월성’ 부분)

백무산의 시집에서도 멸종을 자처한 인간을 향한 비판을 엿볼 수 있다. 시인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듣지 않는 이, 누구인가.

“아무도 울지 않는데 오는 새벽은/멸종의 새벽이다//닭의 모가지를 비틀면/새벽은 오지 않는다”(백무산, ‘닭 모가지를 비틀면’ 부분)

오경진 기자
2025-12-0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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